본문 바로가기
여행/Khumbu & Langtang_2017

그래요, 시국이 이런데 내는 떠나요.

by babelfish 2017. 3. 5.

다시 네팔 가기로 했다.

 계획했었던 작년 랑탕행을 지진 핑계로 접었다가 아무래도 서운해서 라기보단 다리 힘 떨어지기 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수 있을 만큼은 해두자는 생각에 다시 계획을 짰다. 쿰부와 랑탕 짧게 돌아보고 남는 시간에 포카라에서 쉬는 걸로. 한 줄로 적어놓으니 간단해 뵈는데 실상 네팔에 머무는 30일 가운데 25일 정도를 산길에 배분하는 나름 빡빡한 일정이다. 다른 사람들 일정에 훈수 둘 땐 네팔까지 가서 열심히 살고 그러지 마시라고 말렸었는데 이번엔 내가 그러게 생겼다.

 

올해 2월 중 네팔 내 지진 기록. 아직도 네팔 중부는 여진이 남아있다.

 

 지난번 안나푸르나 지역과 비교해서 쿰부는 좀 힘들단다. 세계 제1봉 에베레스트가 있는 동네에 몰려드는 트레커 때문인지 물가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고 칼라파타르나 고쿄리의 고도는 쏘롱라보다 높은 데다 길 찾기도 만만찮다는 게 다녀온 분들의 공통된 이야기. 근데, 경험했다시피 히말라야 트레킹에 필요한 체력을 위해 한국에서 단기간에 준비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할 수 있는 거라곤 효율적으로 배낭을 꾸리는 것뿐. 그런데 이것 역시 만만찮다. 이번엔 포터를 쓸까? 포터,..... 내가 가진 체력과 길 눈으로 찾아갈 수 있는 능력치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목적지까지 안내해 주는 옵션. 운이 좋으면 의지할 수 있는 페이스메이커 역할도 해주니 2 주(대략 $25*14  \ 330,000. 세상에, 2 주 동안 사람 고용하는 인건비가 30만 원 선이다. 이게 네팔의 인건비 수준.) 정도의 비용이 부담되는 것은 아니고, 또 노포터 노가이드라는 정체불명의 타이틀에 목을 매는 것도 아니다.

 근데 난 혼자가 편하다. 내가 고용한 사람임에도 계획 변경할 땐 동행의 사정이 신경이 쓰일 테고, 밥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트레커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서 버텼을 텐데 그걸 뻔히 알면서 다음 날 아침 웃는 얼굴로 서로 '굿모닝'이라며 인사하기도 면목 없..... 아니 그전에 내 짐을 다른 사람의 어깨에 올리는 게 불편해. 그래, 까칠한 내 성격 탓이다. 힘들까? 에라, 올라가다가 버거우면 때려치우고 내려오면 되지.

 네팔 준비하다 보면 산행에 대한 욕심이 커질 때가 있다. 왕년에 뛰놀던 돼지 평전 생각도 나고.... 아재가 그렇지 뭐.
'기왕 쿰부 가는데 3 Pass 3Ri로 도전할까?'
'서킷 어라운드 때는 마낭에서 하루만 쉬는 걸로 고소 적응했었는데 쿰부도 하루면 충분하지 않을까?'
' 빠르게 움직이면 하루 더 줄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뭐 그런 욕심들 조합하다 보니 이게 썩 위험하고 멋진 거라.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히말라야를 찾은 건 클라이머는 고사하고 트레커로서도 아닌 그저 투어리스트였다. 인도 여행용으로 꾸린 배낭에 다용도 복장을 조합해 A.B.C를 찍고 온 게 전부. 운이 좋아 지난번 서킷은 용케 넘겼지만 솔직히 만만찮게 고생했었잖아. 뭐 얼마나 용감하길래 쿰부에서 욕심을 내는 거야? 그러지 말자. 각오와 준비는 부족하지 않게 하더라도 욕심은 내려놔야지. 

 텐징-힐러리 공항을 이용하고, 남체 바자르에서 에베레스트 알현하고 나면 여행자의 버킷리스트는 얼추 채운 거다. 그다음은 '누림'. 칼라파타르까지야 어렵지 않게 가겠지만 굳이 촐라를 넘어 고쿄리를 고집할 사명 같은 건 없다. GPX 따라서 길 짚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복귀하는 것도 무척 합리적인 옵션. 부와네스바르그에서 지갑 잃어버린 우울한 마음에 도시 전체를 버리고 도망갔던 것, 바가지 피해 반나절만에 아그라 빠져나갔던 것마냥 히말라야 고개도 언제라도 포기할 수 있는 옵션이다. 혼자 움직이는 만큼 겸손하게 그리고 언제든지 뒤돌아 나올 수 있는 가벼운 발걸음. 그 초심을 잃지 않을 것. 쿰부에서 포기하는 게 많으면 랑탕이 여유롭겠지. 살살 댕기자. 그저 하나의 여행지일 뿐이라고.

 

TrekkingNepalKhumbuHimal.gpx
다운로드

외국 트레커가 공유한 GPX를 내 계획에 맞춰 편집한 경로. 내 목숨 줄.

 

 이상, 쿰부행이 칼라파타르 하나만 찍고 오는 심히 단순하고 비겁한 여정 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미리 깔아놓는 변명.

 아, 젠장 늙어서 그런 게 아니야. 내 안의 예의 GHOST가 그렇게 속삭이고 있다고!

 도대체 2013년의 나는 무슨 깡으로 그 꼴을 하고서 ABC까지 갔던 걸까?.....-.-;;;;;

 

 

준비물 점검

카트만두행 E-ticket, Visa 서류, 호텔 바우처, LUCLA행 국내선 E-ticket

 

서류 : 여권, 항공권(에어차이나 - 환승 호텔 포함), 사진(12), USIM(ncell).

기기 : 카메라(미러리스-64G), GoPro(32G), 미니 삼각대, 핸드폰.

장비 : 배낭(50L), 중등산화, 침낭(900g), 폴(루클라 구입), 헤드렌턴, 아이젠, 게이터, 장갑(3종), 선글라스.

기타 : 이동식(4회분), 로션(50ml), 핸드크림(50ml), 선크림(40ml), 커피(20), 슬리퍼

 

옷 

- 하의 : 반바지(1), 여름 등산바지(1), 동계 등산바지(1), 깔깔이 하의(1).

- 상의 : 언더레이어(2), 여름반팔(1), 면티(1), 기모셔츠(1), 플리스(1), 경량패딩(1), 하드쉘(1)

- 기타 : 히트텍-상/하(1), 속옷(3), 양말(4), 모자(벙거지, 비니), 머플러, 수면양말.

 준비물 챙기면서도 다시 느끼는 거지만 여행이 점점 산으로 가고 있다. 아이젠과 중등산화가 필요 없는 여행으로 전환할지 좀 더 고급 장비를 마련하고 가이드와 포터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준비할지 이제 슬슬 결정해야 할 것 같다. 뭐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7월쯤에 "몬순 기간의 ABC 가 궁금한데?" 라며 또 카트만두행 비행 편에 오를지는 알 수 없지만. 진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문제....-.-;;;

시국이 이래 될지 모르고 반년 전에 티켓을 끊었어요. 으앙~

 

그러니까 이번 봄은 네팔에서 맞는 걸로.

'여행 > Khumbu & Langtang_20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카라, 잉여 잉여 -> KTM  (0) 2017.04.22
LUA -> KTM -> 포카라  (0) 2017.04.22
고락셒 -> LUA  (0) 2017.04.22
로부체 -> 칼라파타르 -> 고락셉  (0) 2017.04.22
남체 바자르 -> 로부체  (0) 2017.04.21
KTM -> LUA -> 남체 바자르.  (0) 2017.04.15
출발, 청두 환승 카트만두.  (2) 2017.04.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