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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Khumbu & Langtang_2017

남체 바자르 -> 로부체

by babelfish 2017. 4. 21.

▒ ▒ ▒ 03.10 ▒ ▒ 

 

오늘도 새벽부터 인공위성 한 장 찍고 하루 시작.

  새벽에 깼다. 화장실 가느라 일어난 거였는데 볼 일 보고 나서 이불속에서 자세 잡으면서 좀 경망스럽게 뒤척이고 나니, 어.....? 호흡이 모자란 거야. 암만 크게 심호흡을 해도 다음 숨은 더 가빠지네? 헐퀴, 이거 이대로 들숨 날숨 누적되면 산소 적자 나서 결국엔 절명하는 거 아닌가? 순간 겁도 났지만 좀 어이가 없었다. 산에 들어온 첫 날도 아니고 남체에서 고소 적응하고 난 날 밤에? 헤에~?

 ㄴㄴ, 그럴리 없다. 정신 차려! 이거 별 일 아냐. 자는 동안 흡-배기 시스템이 가동률 낮추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크게 뒤척이는 통에 몸이 놀래서 노킹 현상 온 거야. 그렇게 맘 다잡아먹고 이불 뒤집어쓰고 정좌해서 잠깐 복식 호흡하고 나니 정상으로 돌아왔다. 서킷 때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었지. 그게 피상이었던가? 마낭이었던가? 쨌든, 그렇담 나는 3,500M 고도 찍을 때 약하게 고소가 한 번 오는 몸이라는 건가? 고산증에 대해 하나도 몰랐던, 그래서 걱정도 없었던 ABC 때는 진짜 한국 산 타듯이 막 뛰어다녔었는데 알면 알수록 겁은 많아지고 걱정되고 그렇다. 아는 게 병 맞아. 사실 높은 산에서 수면 중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그로 인해 자주 깨게 되는 건 아주 낮은 단계의 - 그러니까 일반적이고, 정상적이며 오히려 없으면 서운할 정도의 가벼운 증상이거든. (근데 직접 겪어봐 후달려.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입과 코를 틀어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독방에서 혼자 자던 중이라면 스릴이 두 배! )

아침은 오트밀. 이게 양은 적어도 묵직해서 잘 안꺼진다. 힘이 나네. 배고파서 힘든 거였어?

잘 쉬었다 갑니다. 사쿠라~

  그리고 머리에 그려지는, 이제 시작해야 할 남체 벗어나는 오르막 길. 어제 맨 몸으로 호텔 다녀오는 길도 힘에 부치더만 이걸 배낭 메고 어찌 시작하지? 단순히 힘이 든다기보단 뭔가 밸런스가 안 맞는 것 같은 기분이다. 웜업 전에 무리를 하고 있는 걸까? 하루 100km씩 자전거 타면서 업힐 칠 때보다 근력이 더 필요한 길은 아닌데 뭔가 살짝 말렸다.

그런데 막상 길을 나서면 또 꾸역꾸역 잘 간단 말이지. 이것 참. 

 

계곡 건너 마을 '포르체' 예쁜 마을이지만 우리가 갈 길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 '풍기탱가' 계곡 바닥 찍고 '탱보체'로. 하아~ 저 다 까먹고 다시 올라가는 600m짜리 고개.

 

고쿄 트렉과의 갈림길, '사나사'.

  남체까지는 산에 갇힌 답답한 길이었지만 지금부터는 여러 봉우리들이 연출하는 조망을 즐기며 올라가야 하는데 날씨가 계속 흐렸다. 이러면 재미없지. 흐린 만큼 시야도 닫히고, 길도 힘들고 말이야. 이러다 어제 오후처럼 눈까지 내리면 갑갑해질 텐데....;;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쥬? 또 눈.

 

 

야, 그런 포스로 코 후비지 마.....-.-;;;

 

깊은 산에서 눈 많이 내리면 싸돌아 다니지 말라고 배웠는데 히말라야에서 이러고 있다.

탐세루크 빙하. 

점심 먹고서 눈 그치고 하늘이 열릴 때쯤

 탱보체에 도착.

오를 땐 몰랐다. 저 구름 뒤에 에베레스트와 아마다블람이 있다는 걸.

 

 

 

자, 다시 내려가자 디보체로, 어휴~ 슬슬 짜증 나기 시작하는 업&다운. 

디보체 도착. 다시 쏟아지는 눈. 내일 날씨를 좀 걱정해야겠다. 

같은 숙소에 묵던 가이드들이 '스톰'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어.....-,.-;;;; 

 

▒ ▒ ▒ 03.11 ▒ ▒ 

 디보체, 늘 서너 시에 깨서 별 사진이나 찍고 그랬었는데 오늘은 아예 포기하고 간만에 푹 잤더니 개운하다. 어제 먹은 갈릭슾 덕인가? 아님 탄핵이 인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어서 그런가? ㅋ. 방금(04:55) 바깥을 보니 와~ 아직도 눈이 내린다. 밤 새 쌓인 눈이 연출한 풍경이 ABC 때 히말라야 롯지에서의 새벽이랑 느낌이 비슷하다. 아이구 반가워라. 그때처럼 이틀 뒤엔 깨끗한 하늘이 열리려나? 러셀까지는 아니지만 벌써부터 눈 밟고 올라가는 거 이거 좀 불길한데. 슬슬 쿰부 지역이 맘에 들지 않기 시작한 나는 콱 접어버리고 내려갈까 싶기도 하다는 게 지금의 솔직한 심정.

 아침부터, 아니 아침까지 눈이 쏟아지니 롯지에 모인 사람들 비상이 걸렸다. 정해진 일정이 있는 단체는 특히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안전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어서 좀 심각했다. 우리는 대분의 트레커가 출발한 후 그 발자국을 따라 팡보체까지만 이동하기로 하고 좀 늦게 나섰다.

 

와~ 눈 참 복스럽게 쌓였다. 이거 어쩔......ㄷㄷ

그러거나 말거나 까마귀가 야크 먹이를 뺏어 먹는 평화로운 앞마당 풍경.

산은 살벌한 풍경.

아침, 애플파이.

눈 맞을 각오하고 이동. 짧은 시간이지만 제법 강하게 내리는 눈을 뚫고 팡보체로.

 

 

뒤에서 따라갈 땐 별생각 없었는데,

선두에서 경로 잡을 땐 눈발에 흐려지는 야크 발자국 좇으며 눈 부릅뜨고 길 짚어가고 있다. 이거 뭔 조난도 아니고. 

 

 STOP! 계획한 대로 여기 팔보체. 아니 팡보체에서 멈췄다.  11:30

 점심부터 휴식, 예 ~!

 고소 적응이야 천천히 올라가면서 컨디션 맞추기만 하면 되는 거지 굳이 쉴 롯지까지 맞춰야 하는 건 아닐 테니. 눈길에서 고생하기보단 쉬는 게 현명하다. 혹시라도 밤에 폭설이 쏟아지면 내일 퇴로 뚫기도 여기가 더 용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젠장 맞을 날씨. 

 동네 산책, 신라면 쇼핑.... 그리고 마을에서 더 할 건 없다. 롯지에서 죽때리기만 해도 추워 죽겠는데 무슨 마을 탐방이여.

 에베레스트를 네 번이나 올랐다는 전문 세르파. 남체부터 일행처럼 같이 움직이고 있는 아이리쉬 커플, 루클라 사정이 안 좋을 걸 예상하고 내려갈 땐 지리 통해서 육로로 갈 거라는 루마니아 아저씨, 러시아 언니 2명. 난롯가에 모여 앉아 신발 말리면서 블랙티 마시고 있으니 이제 제법 히말라야 롯지 분위기 난다야.

 

흠~ 스톰이란 말이지.

 

궂은날의 히말라야 풍경은 흑백 사진처럼 보이다.

아마다블람이 구름에 갇혀있다. 이것 참......;;

 쿰부 지역으로 들어온 게 7일이니 오늘 산행 5일 차, 첫날부터 오후만 되면 흐려져 눈/비를 뿌린다. 모름지기 장기 트레킹이란, 늦어도 서너 시까지- 볕 있을 때 걷는 거 마무리하고 해 지기 전에 간단히 씻고 옷 갈아입고 차 한 잔 하면서 쉬다가 저녁 먹고 롯지 난롯가에서 수다 떨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지 말이야. 이렇게 눈 맞고 돌아다니길 5 일째 에휴, 등이 곱는다. 

▒ ▒ ▒ 03.12 ▒ ▒ 

따란~ 구름 걷혔다.

아마다블람이 딱!

에베레스트가 딱!(이라기엔 너무 쪼만하게 보이네)

 

 

3형들 학교에 기부하러 간 동안 좀 쉬다가 11시쯤 출발.

 

 

 

 

 

 

 

 날이 갠 것 같지만 여전히 구름은 많다. 반나절 걸어 도착한 딩보체. 이제 4,350m. 지금껏 날씨 걱정하느라 고소 적응은 뒷전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낚여 판단력이 떨어지면 사고 날 수도 있다. 몸 상태 면밀하게 체크해야지. 원래 하루 쉬면서 고도 적응해야 할 곳이지만 어제오늘 반나절씩 움직이면서 1/2의 속력으로 천천히 올라왔으니 하루 쉰 거나 마찬가지. 어쨌거나 예정대로의 표준계획에 맞춰 움직이는 중. 숙소 도착은 썩 이른 시각에 했는데 잠깐 잔다는 게 그대로 숙면에 들어가 버렸다. 저녁밥도 거르고 잠만 내리 잤는데 약간 불편했던 속이 한 끼 굶었다고 싸악 나았다. 참 단순한 몸이다.

 

▒ ▒ ▒ 03.13 ▒ ▒ 

 

 

탐세루크와 캉테가의 모양이 많이 변했네. 좀 땡겨볼까 ?

 

임자체(아일랜드 피크)가 저 속에 있으니 완전 쩌리다. ㅎㅎ

하긴, 직접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6,189m짜리 병풍이 여기서 뭔 의미가 있겠니.

 

아마다블람의 모양새도 달라졌다. 남서에서 북서로 바뀐 내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산세.

 

페리체, 탐세루크와 캉테가를 뒤로하고 투그라로. 

정면엔 푸모리가 빼꼼.

투그라.

 

고도를 높일수록 입맛이 없다. 간단한 세르파 스튜,

 

밥 먹고 차 한 잔 하면서 남은 반나절 오르막을 가늠하는데,... 흐~

내가 이럴 때 쓰려고 맨들어둔 귀한 표현이 있지, '밑에서 보면 욕 나오고 올라가면 토 나오는 오르막' 

높이 오른 만큼 조망이 좋긴 하다. 기가 막힌 경사, 기가 막힌 풍경.

 

 

투그라 앞의 언덕까지 가면 정면 푸모리가 쑤욱 올라온다.

뒤편 아마다블람은 이제 잠시 안녕.

강 건너 촐라 방향으로 난 길. 며칠 뒤 저 길을 가게 되려나?

안나 서킷의 까끄베니 부근 풍경과 비슷한 느낌.

 로부체에 도착해 밥 먹고 저녁에 잠깐 나갔다가 눕체 머리에 걸린 석양을 보고 응? 잠깐 갸우뚱했다. 저게 뭐지? 아, 해가 질 땐 저렇게 산 머리가 금색이 되지! 산에 들어온 7일 동안 오후 날씨가 궂어서 까먹고 있었네. 컨디션 따라 지능도 낮아졌나? 췌.

  벌써 고도 4,910m. 하이캠프도 4,800었으니 이 고도에서 숙박은 처음. 가만히만 앉아 있으면 고소 증세는 없다. 날씨도 급격히 좋아져서 오늘 트레킹 마무리 할 즈음까지 따듯하기도 했고. 롯지로 들어오는 마지막 길이 수월했어서 그런지 하이캠프보단 한결 편하게 느껴진다. 근데 올라가는 건 힘들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쏘롱라 넘어봤으니 칼라파타르까진 어떻게든 가게 될 테지는 개뿔. 안나 서킷보다 훨 높은 난이도. 이건 암만 생각해도 여행자가 선택할 만한 곳이 아니다. 솔까 이 정도면 클라이밍의 범주에 들어가는 게 맞지 않나? 나중에 추억 보정으로 미화시키지 말 것.

 고소 증세와 싸우게 될 환경까지 감수한다는 건 여행자에게 어떤 의미일까. 멋진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치르는 비용? 자신과의 싸움? 빨간 램프를 켜고 쿰부 깊숙한 곳으로 날아가는 헬기를 보면서 히말라야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의 위기까지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건가 갸웃하게 된다. 글쎄, 사람마다 의미란 게 다르겠지만 난 이걸 마지노선으로 해야겠다. 안나 서킷보다 더 힘든 길은 노 땡큐. 촐라는 버린다. 후딱 마무리하고 포카라로 튀어야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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