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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Camino_Frances_2019

순례길 트러블 관리.

by babelfish 2020. 1. 10.

 렌즈 파손 -> 표준은 없지만 그래도 잘 버텼어!

 제일 큰 낭패는 까미노 8일 차에 발생한 표준 줌 고장.  소니 미러리스의 번들, 표준 전동 줌 렌즈 16-50은 휴대성과 내구성을 바꾼 놈이다. 캐논 구형 쩜팔만큼은 아니지만 썩 고장 잘 나는 렌즈. 그래도 이 놈, 히말라야 산길을 네 번이나 같이 다녔어도 별 탈 없어서 이번에도 좀 버텨줬으면 했는데 여기서 고장 날 줄이야. 마운트 한 상태로 벤치에서 바닥으로 톡 떨어졌는데 그 후 몇 장은 찍히더만 이내 바디와의 통신을 거부하고 뻗어버렸다. 으힉~!! 그나마 바디 멀쩡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그리고 부르고스와 레온에서 휴식을 포기하며 돌아다닌 끝에 알아낸 사실은 순례길에서 소니 전동 렌즈가 고장나면 고칠 수 없다는 거다. 단톡 방 도움받아 구글 맵에서 찾아냈던 카메라 수리점의 할아버지께서는,

와, 이 대사를 직접 들을 줄이야. @.@;;;

비슷한 말씀을 하셨고, 그 친절한 할아버지가 적어준 주소로 찾아간 레온의 수리점에선 ‘우리 이거 고치려면 마드리드로 보내야해요.(해맑)' 라는 대답을 들었다, 맙소사. 고장 나자마자 서울로 SOS 쳐서 레온 쯤에서 받게끔 국제우편으로 부치라 그랬어야 했나? 설마 문명사회에서 이딴 것도 수리가 안될 줄은 몰랐지. 진짜 나도 난데 늬들도 어지간하다. 그나마 레온까지 오다 보니 지난 열흘 동안 망원으로만 찍었어서 적응도 되고 할 만큼 했다 싶어 포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못 받아들이면 뭐 어쩔 건데?

  표준이 고장나 놓쳐 짜증 났던 장면도 많지만 주야장천 망원 렌즈만 마운트하고 다녔던 덕에 찍을 수 있었던 사진도 많다. 애초에 무게와의 싸움인 이 길에 굳이 망원을 욱여넣었던 게 순례길 후기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을 보충해 보겠다는 나름 갸륵한 각오 때문이었는데, 세상에 먹다 배 터져 죽게 생겼네 망원. ㅋ

뭐, 왜요?

 

 물집.

  조그만 트러블이라도 있다면 물집이 없을 순 없다. 그게 안 생기려면 신발과 내 발의 씽크로가 아주 좋고, 무리 없는 걸음걸이에 어느 정도 단련된 발이어야 한다. 그렇게 세팅하기 힘들다 그러니 어차피 생길 거야 받아들여. 물집 생긴 다음에 관리 잘하는 게 현실적이다.

 빨리 잡아야 한다. 새끼발가락 등, 발가락 사이, 앞꿈치(잘 안 생기는데 이게 터지면 크리다), 뒤꿈치 바깥쪽. 뭐 어디든. 물집이란 게 살 틈(층)이 벌어지면서 물이 고이는 거라 분명한 통증이 있다. 간질간질, 찌리릿 그런 느낌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가능한 한 빨리 멈추고 발을 살펴야 한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 자신과의 싸움 그런 거 하지 마라 제발. 실을 통과시켜 물을 빼내든 종이 반창고로 덮어 보호하든지. 뭐라도 해야 한다. 그냥 두면 점점 커지는데 물집이란 게 두 배 커지면 다루기는 네 배 어려워진다. 바늘, 실, 알콜솜, 화장솜, 종이 반창고 넉넉히 챙길 것.

 가능한 한 빨리 잡아 잘 달래서 굳은살로, 다시 물집 잡히지 않게끔 진화시키는 게 최종 테크. 걷는 동안 외국인 포함해서 네댓 명 물집을 살펴줬는데 걔들은 물집에 실 통과시키는 거 보곤 기겁을 하드라......ㅎㅎ.

 

빈데 - 베드 버그.

 베드 버그 퇴치에 제일 신경 써야 할 포인트는 잠자리다. 위생 평점 살펴서 알베르게 선택하고, 알베 내에서도 다른 순례객이 내 침대에 배낭 기대지 못하게 관리하고, 짐 풀기 전에 바닥/침대 아래쪽 살피고...... 할 일 많다. 이게 하룻밤 잘못 걸리면 진짜 일정 파탄 나거든.

 나는 한국에서 계피 조각 사다가 걷는 내내 라이너 속에 넣어뒀는데 배낭 안에 계피 냄새 은은하게 퍼지는 것도 좋은 데다 어지간히 기피제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한다. 확률을 줄이는 거지 확실한 건 아냐. 베드 버그에 관해서 ‘확실’한 건 삶아 죽일 때 뿐이다. 일광소독도 솔직히 100%는 아닌 거 같어.) 잘 때도 계피를 라이너 파우치에 담아 끄트머리 발치에 그대로 뒀다. 아예 세탁할 때 빼곤 꺼내지 않았는데 베드 버그 어지간히 물리긴 했어도 발은 안전했던 게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라벤더 향 방충제 쓰는 것도 괜찮은 것 같더라.

 만약 물렸다는 걸 알아채면 바로 항히스타민제부터 먹고(먹는 게 바르는 것보다 중요하다.) 약 바르고 가능하면 그 날 여유 있게 일찍 숙소 찾아 지금 입고 있는 옷만 제외하고 모두 세탁해서 널어 말려야 한다. 

 

[[ 이렇게 ]]

 문제는 내가 물렸는지, 물렸다면 어디서 물렸는지 알기 힘들다는 거다. 이게 모기처럼 즉각 증세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물리고서 2~3일, 길게는 일주일이나 잠복해 있다가 간지러움이 올라오기 때문에 대응하기 까다롭다. 솔직하게 어느 정도 포기하고 순례길의 컨텐츠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나 싶다. 킁~ (-,.-);;;;;

 내가 봤던 가장 완벽한 베드 벅 관리, 뜨라바델로의 CASA SUSI.

순례객은 배낭을 비닐에 넣어야 침실로 입장이 가능하다.

'순례객 너님이 개인위생 관리 얼마나 잘했는지는 관심 없구요. 배낭을 침실로 가지고 들어가려면 무조건 비닐에 넣으세요' 그러면서 배낭이 쏙 들어가고도 남을 대따 큰 비닐봉지를 건네준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나. 이러니 위생 평점이 만점이지.

베드벅 관리만 봐도 알 수 있는 정갈함. 여기 좋아.

 

 예약해둔 교통편의 변경.

 산티아고에서 다시 생장으로 가기로 맘먹고 보니 야, 이거 시간/비용 들어가는 게 만만찮다. 아, 물론 마드리드 들어가서 대도시 물가 체험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산탸고에서 빰쁠 거쳐서 생장으로 가는 이틀 동안 쓴 돈이 148......뭐여 이거?

 암튼, 비용은 비용이고 산티아고 역에서 빰쁠로 나가는 기차 예매하고 제시간에 나갔더니,

[[ 승강장이 휑하다. 승무원이 없어. 왤까? ]]

 웁스, 오우렌세까진가? 암튼 일부 구간이 버스로 변경되었단다.  그런데 이걸 모니터에 한 줄로 띄우고 안내 끝이야? 내가 사무실 가서 안 물어봤으면 그냥 날리는 거잖아. 늬들 너무 쿨한 아니니? 

 ※ 유럽은 파업이 잦다. 그러니 계획했다고, 예매했다고 철석같이 믿는 거 아니다.

꼭 파업이 아니라도 교통편은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으니 현장에서 재차 확인하고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직원 찾아가 물어봐야 한다. 특히나 파리에서 바욘 들어가는 TGV는 상시 확인해야 한다 그러더라. 긴장 늦추고 우리나라처럼 ‘직원들이 어련히 알아서 안내할까’ 같은 기대 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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