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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Camino_Frances_2019

순례길 #1 - 7,8월의 프랑스 길 개관.

by babelfish 2020. 1. 9.

야...... 동선 지저분한 거 봐라. 포르투를 포기하고 피레네 2회, 별나긴 하다.

인천 출발해서 순례길 시/종점까지. 
 in -> 마드리드까지 이틀, 마드리드에서 빰쁠로나 거쳐 생장까지 하루.
 out-> 산티아고에서 빰쁠까지 기차 하루. 마드리드에서 인천까지 이틀.
 결국 시/종점까지 왕복에 최 장 6일 걸린다. 직항이나 대기시간 짧은 비행 편이면 2~3일 줄어드는 거고.

일단 예산부터,

총예산 350만원에서 300 유로 정도 남았다. 거꾸로 정산해본 거라 정확하진 않지만 큰 오차 없어.

 비용은 흔히들 말하는 ‘1€/km’를 여전히 적용할 수 있다. 즉, 순수 순례길에만 € 800. 혼자서라면 좀 빠듯할 텐데 2~3명 모여서 한 팀으로 움직인다면 박하지 않은 수준은 된다. 거기에 도시 간 이동, 대도시 관광, 입장료, 기념품 등을 더해 예산 잡는다. 그 정도를 기본으로 하고 얼마나 여유롭게 더할 건 지는 각자의 판단. 1€/km보다 낮게 잡진 않는 게 좋다. 위의 표에서 내가 길에서 쓴 돈의 합계가 1,099인데 그중 생쟝에서 산티아고까지 1회 차에 들어간 비용은 (숙식 + 교통/론세 예약 + 약품 + 폴 + USIM + 입장료) € 980 정도였다.

  그런데 ‘€/km’ 이건 예산 짤 때나 쓰는 개념이지 운용할 땐 의미 없어진다. 어차피 경비라는 것이 ‘하루 동안 먹고 자는데 쓰는 돈’의 항목으로 지갑에서 나가는 거라 적게 걷는다고 절약되거나 많이 걷는다고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게 아니거든. 하루 € 30 쓰면서 30km 걸으면 킬로미터 당 € 1.0가 되는 거고 20km 걸으면 € 1.5, 40km면 € 0.75가 되는 거지.

 그렇다면 많이/빨리 걸으면 경비가 줄어드는 건가? 예산 짤 때는 그렇다. 30일 완주가 40일 완주보다 전체 예산이 적게 잡히겠지. 그런데 걷고 있는 시점에서는 (일정을 열어둔 게 아니라면) 스페인 떠날 비행 편까지 이미 예매해 놓고 온 상황이잖아. 내 빠르기에 맞춰서 출국 날짜가 당겨지는 게 아니라고. 오히려 빨리 걸을수록 여행 막바지에 산티아고와 다른 비싼 도시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져 총경비가 늘어나게 된다. 마지막 대도시 투어 접고 생장-수비리 구간 2회 차 걷기로 마무리했어서 경비가 남았던 내 경우는 그 반례가 되겠네. 그러니까 출국 비행 편이 정해진 순례객이라면 예산 초과하지 않게 과속 자제염.

 

 걷기 - 가장 기본인데 이게 의외로 편차가 크다.  ㅇㅇ, 꽤 커.

 확실히 평소에 걸어두는 게 좋다. 한국에서 평범하게 사회생활하면서 30km 정도 며칠씩 걸었을 때 내 발 상태가 어떻게 되는지 경험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게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 가급적 같은 세팅(양말/신발/배낭)으로 - 그렇게 걸어보고 나면 적응에 도움된다. 평소 가까운 산이라도 오르내리면서 발바닥 좀 다져두고 내리막에서 발목과 무릎에 걸리는 하중 다루는 방법만 익혀도 많이 수월해지거든.

>> 이 걷는 방식과 빠르기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순례길에서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

 

[ 쉬는 시간마다 벗어 말리는 부지런함도 챙길것. ]

 

 폴은 평소에도 산 타면서 안 쓰던 사람에겐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보조 아이템이지만 사용법을 익혀 잘 다루면 확실히 좋다. 지쳤을 때, 혹은 지치는 걸 조금 미뤄야 할 때 썩 도움 되었다. 장거리 평지와 오르막에서 특히 요긴했고 가파른 내리막에선 그다지. 빨리 내려갈 땐 번거로워서 쓰기 힘들더라. 오르막에선 헛짚어도 한 발짝 휘청거리고 마는데 내리막에서 체중 싣고서 잘 못 짚으면 구르거든. 복잡한 도시 안에서도 안 쓰는 게 좋다. 시멘트 바닥 찍는 소음이 동네 주민께 민폐이기도 하고 엄한 구조물에 걸리면 위험해.

 주말 근교 산에 가보면 대부분의 등산객이 폴을 들고 다니는데 올바르게 사용하는 분은 백에 하나 찾기도 힘들다. 까미노에서도 마찬가지, 제대로 사용하기보단 구비해놓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는- 실질적으론 토템 같은 그 처지가 안타까웠다. 바른 보법에 제대로 사용하는 폴의 도움을 더하는 거지 거칠게 걸으면서 지팡이 대용으로 쓴다고 해서 관절이 편해지는 건 아니다. 걷는 법과 폴 쓰는 법은 유튭에 좋은 영상 많다. 공부해두면 꼭 까미노가 아니더라도 도움 된다.  폴 사용법은 고사하고 잡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더라. 다들 손목은 편안하신가 몰라.....-.-;;;

[ 셀카봉 기능은 보너스. ]

 사족, 폴과 항상 엮이는 이야기가 '도가니 아껴 쓰기'인데 말인 즉 폴을 잘 활용해서 무릎 관절을 보호한다는 말이잖아. 내 경험은 좀 다르다. 폴을 매개로 하체 근육이 받아야 할 무게의 일부를 상체에 덜어줘서 다리 근육의 피로를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건 맞는데, 정작 무릎 관절 보호는 하중 배분/허벅지 근육을 기초로 한  '보법과 스트레칭'이 더 중요하다는 게 내 지론. 물론 근육을 아껴 쓸 수 있다는 건 아주 훌륭한 장점이지, 그렇지만 아무리 발랄(?)하게 움직여도 하체 운동하는 것보단 관절 가동 범위가 적은 이 길에서 무릎이 아프다면 뭔가 잘못된 거 아냐?  본인에게 맞는 빠르기와 '관절 사용법'(늬들 런지/스쿼트 안 해봤냐, 제발 허리 세우고 중심 뒤로 빼라고! 왜 그 운동할 때랑 이 운동할 때 자세가 다른 건데?)을 세밀하게 찾아 세팅하길 좀 진지하게 권함.

 

 배낭 무게 - 여름인 만큼 가볍다.

 트레커에겐 아주 중요한 장점. 선택지가 여름 or 겨울 둘 뿐이었던 내 입장에선 망설일 게 없었다. 까미노 경험담들 읽어보니 겨울도 참 매력 있겠다 싶었지만 다른 길에서 충분히 겨울을 경험했어서 굳이 까미노에서까지 눈 맞으며 걷고 싶진 않았어. 출발 전에 꾸려본 짐은 트레킹화를 넣은 배낭과 전자 장비를 담은 보조 가방까지 모두 더한 무게가 9kg 미만, 즉 물과 음식을 더해도 10kg에 못 미친다는 말이잖아. 이 정도면 전술행군도 가능하지 않을까? 응, 하지마. 고산에서 13kg 넘는 배낭으로도 다녔는데 해발 2,000M 미만인 환경에서 10kg도 안 되는 배낭이 무거우면 뭐 얼마나 무겁겠어? 

레드페이스 32L 배낭. 노스페이스 짭 아니야. 노스보다 오래된 토종 브랜드여.

 

 지형 길은 평이하다.

 프랑스길에선 첫날이 제일 빡쎄고 또 그만큼 아름답다던데 난.... 뭐 그냥 그랬어. 풍경이야 눈높이를 히말라야에서 회수하지 못한 내 지병 탓이지만 힘들다던 피레네도 포장도로 짚어가다가 산길 한 10분 밟아 고개 넘는 게 고작이거든. 용서의 언덕, 철십자가, 갈리시아로 넘어가는 고개들 죄다 1,500M 미만인 데다 높이에 비해 긴 길이라 완만하게 넘어간다. 오세브레이로가 조금 가팔랐던가? 수비리 가는 내리막길도 나름 악명 있던데 한국 산의 내리막과 비슷한 지형이라 되려 내겐 편했어. 폴도 배낭에 꽂아두고 달렸다. 높이는 별거 아냐, 길이가 문제지. 

여기서 도로 빠져나와 고개 넘는데 15분?
좀 넓게 잡아도 이 정도인데, 푸드 트럭에서 30분 컷. 완만하고 길다.
여름 피레네는 한국에서도 산 좋아하는 사람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하남 검단산.

 이렇게 적어놓으니 지나치게 만만해 보이는데 좋은 날씨의 여름이 그렇단 말이지 추운 계절에 눈/비를 만나면 사정이 많이 달라진다. 오리손에서 론세바까지 17km. 눈바람에 고립되면 안전한 탈출을 보장받을 수 없는 규모인 데다가 시야가 탁 트인 시원한 풍경의 지형도 악천후엔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불리한 환경이 되거든. 산, 특히 능선에선 기상조건에 따라 언제든지 기온이 뚝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겨울엔 무리하지 말고 통제 따라서 발까를로스로 우회할 것.

누군가는 저 재귀 반사판 화살표가 절실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는 말이잖아. 가만 생각해보면 살벌한 풍경이다.

 

 아주 긴 길 - 도 상 거리 798km. (순례자 협회 홈페이지 지도 구간 합산)

 생쟝에서 산티아고까지 29일. 하루 평균 27.51km. 많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레온 연박 덕에 좀 깎이네.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고산에선 경험하기 힘든 점인데, 오랜 기간 매일같이 긴 구간을 걸어야 한다는 게 만만치 않았어. 더위, 오르막, 내리막, 자갈길...... 나름의 이유는 다 있지만 결국은 길어서 피곤한 거다. 짧은 길이라면 피곤하기 전에 숙소에 도착해. 네팔에서 제일 길었던 하룻길이 묵티나트에서 마르파까지 - 이게 맵스미로 25km 못 미치는데 까미노에서 가장 길게 걸었던 [뽀르토 마린 - 멜리데] 구간은 밴드 기록이 46km였다. 35km 넘어가니까 좀 지치더라.

뽀르토 마린에서 멜리데까지 - 10시간, 도상 거리 40km. 쉬는 시간 포함. 평속 4km/h 정도로 계산하면 대충 들어맞는다.

 

 그래서, 까미노는 힘든 길인가?

 하루치 걷기만 생각하면 한나절 등산 정도지만 이게 오랜 기간 동안 걸어야 하는 긴 길이라 속력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개인 간 보속(km/h)에 큰 차이가 없다면 순례길에서 빠르기의 의미는 단위 시간(=하루) 동안 얼마나 오래 걸었나(h/day)가 되거든, 예를 들어 4일 동안 다른 순례객보다 매일 2시간씩 더 걸었다면 8시간을 적립해 하루가 빨라지는 거지. 그렇게 오래 일하면, 아니 걸으면 당연히 힘들 밖에. 즉, 까미노의 노동강도는 '오늘은 몇 시까지 걸을까?'에 달렸어. 외부 요인보다는 나의 의지, 혹은 욕심 따라 정해진다는 말이야.

 부엔 까미노 어플에서 안내하는 34일 일정이면 연박 이틀 포함해도 하루 25km, 그 정도면 여유 있다. 순례자협회 홈피에 나온 36일 일정이면 아주 좋지. 50일 이상의 장기? 야, 그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으면 매뉴얼도 필요 없어, 그냥 니가 알아서 해. 시간만 마련할 수 있다면 천천히 걷는 게 훨씬 좋아. 그렇지만 어디서든 열심히 사는 한국 사람들은 좀 힘들게/빠르게 걷는 편이다. 나도 그랬어, 빨리 걷고 남는 시간 동안 후회했지. -,.-;;; 젠장, 늘 하던 패턴대로 적응한답시고 초반에 열심히 진도 뺐는데 그게 패착일 줄이야. 좋은 음식, 도시의 뒷모습, 작은 골목과 시장, 경로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고 들르지 않고 지나친 성당들...... 놓친 게 많았어.

 발바닥에 굳은살 박인 거 말고는 몸 상한 데 없었고, 물집 생기자마자 잡았고, 무릎도 괜찮았다. 고산 트레킹과 비교하면 높은 산에선 허벅지 근육과 심폐 기능이 중요한데 반해, 까미노는 정강이 아래 부분 - 발바닥, 발가락, 뒤꿈치, 발목, 발등(피로 골절 주의!) 이 고생하는 길이다.

 

 더위. - 여름이니 만큼 날씨도 한몫 거든다.

  유럽이 볕은 강해도 습도가 낮아서 그늘만 찾아들어가면 쉴만하다고는 하던데, 걷는 중엔 별도리 없이 볕에서 더위 먹어야지 뭐. 한국 사람이 여름에 스페인으로 가는 걸 간단하게 표현하면 '찜통에서 불판으로' 가는 거다. 매일같이 500ml 물통 세 개를 길에서 다 비워내고 거기에 더해서 콜라도 2캔씩. 그렇게나 마셔도 수분을 땀으로 다 빼내느라 화장실은 잘 안 가게 된다. 몸 안의 순환 시스템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느낌.

 그래서, 더위 때문에 많이 힘들어? ==> 딱, 예상한 만큼이다. 겁먹었던 게 민망할 만큼 너무 쉽거나 생각하지도 못했던 극악의 난이도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수준이란 말이다. 한국에서도 여름에 잘 돌아다녔으면 별 문제없다. 뒤집어 말하면 평소에 자주 더위 먹어 고생하는 체질이라면 한여름 까미노는 피하는 게 좋다. 메세타, 특히 까리온에서 깔사다 데 라 꾸에사까지 17km 길은 좀 위험할 수도 있어.

[ '그' 구간 ]

[ 두 마을 사이에 Bar가 하나 뿐이라는 건 이해하겠는데 왜 쉼터도 그 지경인 거야? ]
[ 오아시스 바를 제외하면 앉아 쉴 수 있는 그늘은 딱 두 군데. 각각 1/3, 2/3 지점 쯤 있다. ]
[ 그래도 이렇게 척박한 구간 덕택에 펜시 상품같던 이 길이 그나마 순례길 다운 구색을 갖추는 것같기도 하고.....;;; ]

 

 늦은 일몰.

 7월 말, 해넘이 시각이 얼추 21:20 정도였다. 스페인이 중앙 유럽 표준시를 사용하는 나라 중에서도 서쪽 끝이라 원래 해 뜨고 지는 거랑은 안 맞는 데다 여름이라 일몰이 믿기 힘들 만큼 늦다. 그리고 좀 웃긴 게 하지를 넘겨 해가 점점 짧아져야 하는 계절임에도 생쟝에서 산티아고까지 계속 서쪽으로 움직이는 프랑스 길에서는 한 달 내내 해 떨어지는 시각이 아홉 시 반 경이었다. 공립 알베 취침 시간- 22:00을 지키려면 야경은 힘들어. 산티아고와 레온 같은 큰 몇몇 도시 말고는 밤 풍경을 본 도시가 없다야. 젠장, 삼각대는 왜 가지고 간 걸까? 진짜 늠 하네.

[ 07.30 07:09 로그로뇨 외곽의 해돋이. 우리나라보다 얼추 두 시간 늦다. ]
[ 07.30 21:20 아소프라 해넘이. 젠장, 해 떨어지는 게 밤 아홉시 반이야. ]
[ 08.22 21:28 피스테라. 심지어 더 늦어졌어. ]

 낮이 대충 14시간. 길이는 우리나라 여름이랑 다를 것도 없는데 그냥 시간대 맞춰 쓰면 안 되겠니? 아, 날이 따듯하고 낮이 길어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다른 계절보다 도시 간 이동에 이용할 버스의 선택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진다. 눈 때문에 차단되는 도로도 없고 이용객도 상대적으로 많아 다른 계절보다는 버스 편이 많다(고 겨울에 다녀간 분들이 그러더라).

 

비.

 한/두 번 만날 수는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준비도 가볍게 하는 게 맘 편할 거야. 내가 맞으면 오는 거고 안 맞으면 안 오는 거지 확률은 반반. 

여름 까미노의 비는 대부분 이렇게 짧게 치고 가는 국지성 강우였다.

 여름이니 땡볕도 가릴 겸  가져갔던 접이식 우산은 쓰지도 못하고 살이 꺾여서 버렸고 갈리시아 기후 대비해서 샀던 비옷도 대성당 앞에서 돗자리로 펴는 용도 말고는 쓰질 않았네. 여름 스페인은 건기라 순례길에서 맞았던 비는 우리나라 장마 같은 게 아니라 잠깐 내리다 그치는 소나기였다. 다음 까미노엔 우산은 빼고 네팔에서 쓰던 큰 비닐봉지나 하나 가져가야겠어.

가끔 비때문에 발이 잠깐 묶이기도 하는데,
금방 그친다. 비 때문에 지연된 시간 모두 더해도 한 시간이 채 안된 것같다.

 

 납작 복숭아 - Paraguaya.

 여름 까미노 최고의 장점. ( -.-)=b

[ 허기, 갈증, 원기 회복에 백약이 불여 일 납.복 ]

 

 해바라기.

 7월 하순 사리끼에기부터 8월 초순 까리온 사이의  풍경.

 

여행으로서의 순례길.

  출발 전, 한창 까미노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을 때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라는 영화가 나왔었다. 다들 좋다던 그것이 심히 거슬렸던 나는 스페인으로 날아가면서도, ‘그래, 남미를 박살 냈던 제국주의의 본령엔 어떤 자뻑이 남아있으려나?'라는 삐닥한 자세였다. 트레킹이야 좋아해도 그 길에 엮인 역사나 문화에 대해 흥미를 느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거든. 근데 막상 가보니 썩 재밌드라. 카톨릭과 이슬람, 그리고 무데할의 흔적들, Story와 History. 까미노까지 와서 성단 기사단의 흔적을 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야. 아, '푸코의 진자'나 한 번 더 읽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카톨릭과 미술사에 대한 얕은 지식이 아쉽긴 했어도 막연히 그렸던 것과 무척 다른 여행이어서 더 좋았다. 

Knight Templar

 이 길의 가장 큰 특징을 한 단어로 말하라면 '사이즈'다.

 출근(?)해서 일과만큼 걷고 퇴근해서 숙소 잡고 피곤하면 외식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계산기 두드려가며 장 봐서 저녁과 도시락을 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빨래를 한다. 다시 새벽이 오면 피곤한 몸을 끌고 길에 오르는 하루의 반복. 여행이라기보다는 생활에 가깝다. 이 생활이 하루, 이틀의 짧은 체험 삶의 현장이 아니라 근 한 달의 기간이어서 처음 시작했을 때와 달라지기 마련. 환경에 적응해 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굉장히 독특한 여행.

도시락이 별거야? 점심 나눠 락엔락에 담으면 그게 도시락이지.

 조금 다른 형태의 여행을 생각해 봤다, 아주 천천히 걷기.

 메세타 빠져나올 때쯤 했던 생각인데 '야, 여기 제대로 보려면 100일은 걸리겠네' 싶더라. 하루 10km 정도 걸으면서 100일에 걸쳐 피스테라까지 갈 수 있다면 을매나 여유로울까? 들르는 마을마다 구석구석 돌아보고 다녀도 오전에 걷기가 끝나겠다야.

 그리고, 버스로 점프하기. 산티아고에서 생장으로 다시 돌아가 피레네를 두 번째 넘으면서, 그러니까 기차와 버스를 조합하고서 걷다 보니 교통편과 걷기를 엮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이틀에 걸어서 피레네를 넘고, 그 뒤론 좋은 도시들만 찍어서 버스로 점프하면서 산티아고로 가는 것도 썩 재밌겠어. 이 길은 땀 흘려 걷지 않더라도 좋은 여행지다.

  어디 보자, 

 생쟝 - 론세바 - 수비리,빰쁠 - 로그로뇨,나헤라 - 부르고스 - 사아군,레온(2) - 아스토르가,폰페라다 - 오세브레이로,뽀르토마린 - 산티아고(2) + 출입국 4일. 14일 코스. 2주일이면 뽑을 수있네, 괜찮다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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