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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nd_Camino_2023

08.03_Najera → Redecilla del Camino (32.0km)

by babelfish 2023. 8. 3.

05:30 출발.
아이, 왜 노란색 화살표를 흰 페인트로 덮어놨어? 잘 안보이잖아.
첫 마을 아소프라.
주스 한 잔 뽑아먹고, ㄱㄱ

 지난 까미노에서 아주 만족스럽게 묵었던 아소프라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나친다. 여기 무니시팔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묵을 수 없는 이 여건은 분명 내가 원해서 잡은 타이밍이긴 한데 뭔가 애매하게 아쉽단 말야. 지난번과 다르게 구성하고 싶어 한 선택인데 지난번과 달라 서운한 이딴 애 같은 칭얼거림 이라니.

 

아, 오늘 구름 좋다.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 대성당.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
그라뇽 도착.
산 후안 바우띠스따 성당
고색 창연한, ALBERGUE DE PEREGRINOS PARROQUIAL 의 빨래터.

 

  그라뇽의 기부제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에게 유명하다. 함께 모여 저녁 식사 준비하며 교류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곳. '순례'라는 컨텐츠에 가장 어울리는 숙소 형태일 거야. 이곳에서의 경험이 얼마나 멋졌는지 많은 후기에서 읽을 수 있었어. But,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은 곳이라면 그 사람들이 안 좋을 때의 리스크도 있는 거지. 내가 갔던 날은 점심시간에 열 명 정도의 이탈리아 친구들이 음식 준비하느라 주방을 점령해 다른 사람들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짜증 나는 풍경이었다. 어떻게 한 팀이 몇 개 없는 화구를 다 차지하냐. 하, 이것들 진짜..... 그리고 운영자 양반, 이렇게 공간 대비 많은 순례자를 받는 시설이라면 점심은 여러 사람이 주방 이용할 수 있게끔 간단한 음식으로 조리해 달라는 공지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뇨? 이탈리아 애들 천진난만하게 이기적인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니잖아. 한쪽에선 와인과 파스타 종류 별로 깔아놓고 만찬 준비하는데 나머지 순례자들은 라면 끓일 틈도 없어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는 광경을 운영자가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면 이거 어쩌자는 거지? 와 ~ 이런 사람들이랑 저녁에 웃으며 인사하고 같이 음식 만들어 먹는다고? 뭐야??? 여기 정신병동인가 싶더라. 협소한 주방은 불친절했고, 교통정리 하지 않던 호스피딸로는 무능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잖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덜 마른빨래를 걷어 알베르게를 빠져나왔다. 점심 바깥에서 해결하고 도착했으면 신경도 안 썼을, 이런 사소한 일을 꼬투리 잡아 시비 터는 나도 참 어지간하다. 샤워랑 빨래 한 값으로 5유로를 기부함에 넣고 나왔는데 걸으며 생각하니 오늘 묵을 숙소에서 '샤워랑 빨래 안 할 거니까 5유로 깎아주세요'가 통할 리가 없잖아. 숙박은 서비스가 '완결'되지 않으면 1원도 지불하지 않는 게 맞는데 오버했네. '기부제'에 익숙하지 않은 내 촌스러움이지 뭐.

 

하루에 양말 두 켤레씩이나 소비할 순 없지. 샌들로 버티자요.
어라, 주 경계 넘는 건가?
빌어먹을 구름은 하루 종일 좋네.
이렇게 투덜거리며 까스띠야에 도착할 줄이야.
레델시아 델 까미노 무니시팔.16 EUR (순례자 메뉴 포함), 현금 결제.
한산한 주방, 너~무 좋은 거지. 오길 잘했어. 두 시간 전에 해치웠어야 할 꿀꿀이 죽을 야무지게 끓여 먹고 동네 산책.
까미노의 성모 성당
Militia of the Temple. (Knights Templar 아님)

 

 샌들 신고 4km를 걸어 도착한 레델시아 델 까미노의 무니시팔은 아주 한적하고 친절했다. 유모차 끌고 아이와 함께 순례 중인 건축 설계하는 독일 자매님과 네덜란드 부부. 이렇게 단촐하게 다섯 명. 독일어로 대화하다가 내가 질문하니 영어로 풀어서 말을 걸어주더라, 친절한 사람들. '한국인에게 네덜란드는 풍차와 튤립의 나라였어. 그렇지만 2002년 이후론 거스 히딩크의 나라가 되었지.' 이 말에 네덜란드 아저씨는 커피를 뿜으며 빵 터지셨어. 역시 유럽 형제님들 리액션이 좋아.

 알베 주인장(스페인)까지 네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수다 떨다 보니 다른 나라의 언어로 스페인을 여행하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는데 그 와중에 '이 동양 사람, 땡큐는 기본이고 빠리에서는 메-르흐씨, 여기서는 그라시아스, 마치고 폴투 내려가면 오브리가도. 바스크 용으로 '에스께맄 까스꼬'까지 공부해 왔다' 엄살떨어서 짱 먹었다. 알베 주인장 아저씨 혼자만 바스크어를 알아들으셨는데 박장대소하면서 '야 그거 스페인 사람도 모르는 사람 많아.' 라며 신기해하셨다.

 

손전등보다 헤드 렌턴이 여러 모로 유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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