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아에선 까미노 경로 따라가지 않고 작은 성당 몇 개 들르며 빙 돌아 들어갔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또 느닷없이 '좀 다른 길을 걷고 싶었어' 증상이 올라왔지 뭐야.
사리아는 순례 증명서 충족 요건인 얼추 100km 구간의 시점이기도 해서 짧게 걷는 순례자는 도착한 날 정비/1박 하고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점심시간 즈음인 지금 도시를 빠져나가는 길목은 한산해.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어서 사리아에서 출발했을 것이 분명한 가족단위 순례객들도 있긴 하더라만. 왜 큰 도시인 여기서 쉬었다 출발하지 않고 오후에 바로 길 나섰을까? 아참, 나도 생쟝에서 그랬지. 4일 코스로는 좀 길고 5일 코스로 잡기엔 넉넉한 길이니 반나절 논스톱으로 땡겨 하루 줄이려는 계획들이신가.....
호기롭게 사리아 지나치고 케세라세라 중인데, 숙소 사정이 좀 곤란해졌다. 전화로 예약되는 곳이 없어 무작정 걷는 중인데 계속 빈 침대가 없다는 거야. 거리가 늘어나는 건 번틸만 해도 숙소 문의했다가 자리 없어 돌아서는 게 반복되는 건 좀 지치더라. 와 이러다 포르투마린까지 가는 거 아냐? 싶을 무렵,
그래 그 숙소 언제 나오나 한 번 봅시다며 오기탱천한 상태로 큰 기대 없이 들렀던 식당/알베에서 '너 운 좋다. 방금 한 명이 숙박 취소했지 뭐야'라는 반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할렐루야! 32km면 그리 길게 걸은 것도 아닌데 숙소 구하는 과정이 유독 피곤하네. 역시 난 계획 없이 움직이는 여행에 스트레스받는 인간이야.
저녁 먹고선 100km 표지석으로 갔다. 내일 일찍 지나가면..... 새벽이라도 보기야 하겠지만 그 빛에 사진은 메롱할 거잖아. 표지석에 별도 조명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얼릉 가서 미리 보기하고 옵시다.
100km 표지석,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표기하는 거라 100을 꺾게 되면 하루 평균 25km 정도 걷는 이 길이 이제 산티아고까지 나흘이 채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700 후반부터 따라오던 거리 표지가 이제 두 자리 숫자로 바뀌는 이 순간, 살짝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온다. 두 번째 인데도, 이럴 거라는 거 알고 있었는데도 그래. 한 달 동안 봐왔던 찬란한 유적들보다 이 작은 표지석이 더 감동스러운 건 몇 백 년 전 살았던 사람들의 대단하다는 흔적보다는 오늘을 살고 있는 내가 흘린 땀이 더 가치 있기 때문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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