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럴 이래 봤자 새로운 것은 더 이상 없고 체력도 바닥이다. 지친 근육을 테이핑으로 달래며 소염 진통제와 근육 이완제 털어 넣고 스포츠 음료의 힘까지 빌려 남은 퀘스트를 수행하러 나서는, 까미노 마지막 날 아침은 아이템 전. 고지가 눈앞이다, 아낌없이 쏟아 부엇!!
몬테 데 고조 알베르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의 집단 시설인데 동쪽의 한 동만 알베르게로 쓰이고 나머지 숙소는 기업 수련원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이 시설을 가로질러, 덕분에 새벽에도 조명 깔린 안전하고 깨끗한 길.
[순례 증명서]라는 게 있다. 100km 이상만 걸어오면 발급해 주는 상업적인 기념품 같은 건데 기본 양식이 인쇄된 용지에 개인을 특정할 수 있게끔 이름과 출발했던 날짜/마을 같은 간략한 정보를 수기로 기록한다. '모 월 모 일 합포에서 출발했던 김가가 오늘 한양에 당도했소' 이런 식이지. 제출한 신분증과 거쳐 온 내용을 확인해 증명서로 옮겨 적는 약간의 시간 동안 창구 직원과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는데, '오~ 생쟝에서부터? 이 성당 세요는 오랜만에 보네요.' 다른 사람이 듣기엔 시덥지 않은 내용이지만 순례자 입장에선 항상 내 몸에 지니고 다니던 크레덴셜을 (의미를 알고서)다른 사람이 찬찬히 봐주는 건 드문 일이어서 썩 반가운 마음으로 직원의 시선과 대화를 따라가며 지난 한 달을 반추하게 된다. 난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문서가 가지는 '증명'이라는 의미와 별개로 창구마다 다른 발급자의 필체에 따라 타이포 그라피의 '예쁨'에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라 순례자들은 증명서(의 필체)를 비교해 만족하거나 아쉬워하며 품평하는 것도 마무리 과정에 숨겨진 재미 중 하나였다. 그랬던 것이 QR 통해 웹사이트 접속해 개인 정보를 미리 입력한 뒤 번호표 받아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더라. 간단한 확인 절차 후 받은 서류엔 내 인적 사항이 예쁜 폰트로 '프린트'되어 있었다. 새로운 시스템 덕에 발급 절차가 간소해진 만큼 사무소는 더 많은 증명서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창구에서 농담 주고받던 시덥지 않은 시간과 함께 이 길의 아날로그도 하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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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xia/Fistera 행은 https://www.monbus.es/en에서, 포르투행은 알사 홈페이지에서 예매하면 된다. 창구에서 직원 도움받아 예매하면 더 비싸다. 아마 창구 가격이 정가, 홈피 가격이 프로모션 들어간 가격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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