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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는 나의 힘

복수는 나의 것

by babelfish 2007. 12. 23.

아끼던 거울이 깨졌다. 그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 내 방의 어색하고 어지러운 풍경. 깨진 거울속에서 낯선 모습으로 불안해하는 수십 조각의 나. '아무리 거울이 깨졌기로서니....... 이런 몰골 일 수가.......' 빛의 스펙트럼이나 반사체 거울의 특성이나 입사각과 반사각을 생각할 틈도 없이 단 한번의 충격으로 이렇게나 부서져버린 내 모습에 놀라며 눈앞에 보이는 낯선 풍경에 사로잡혀 한참이나 이리저리 갸웃거리던 나. 그렇게 깨어진 거울처럼 감독은 유리보다 더 불안한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지금 우리 모습을 비춰준다.
.
.
.
.
.그리고?, 그래서,............. 어쩌라고?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깨진 거울조각을 다시 맞추는 것이 부질없는 짓인 것처럼 나도 이 영화를 분석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우울한 음악을 들은 것처럼 흐린 날씨에 기분이 꿉꿉해진 것처럼 이 영화가 주는 느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동안 우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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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이 영화의 몇 장면들

#1. 신하균과 배두나가 침대에서 대화하는 장면
- 마주 보지 않고 앞에 놓아둔 거울을 통해 서로의 수화를 알아보는 설정

#2. 신하균이 장기 밀매단 첫 희생자의 머리를 알루미늄 배트로 가격하던 장면
- 점프해서 내리찍는 동작의 리듬감과 경쾌한 소리 '깡!'

#3. 죽은 소녀가 물에 절반 정도 잠긴 채로 떠있는 장면
- 시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눈 빛과 창백한 얼굴.

#4. 죽은 소녀를 부검하는 장면
- 화면이 아닌 소리로 부검과정을 짐작하게 하는 표현과 디테일한 음향

#5. 신하균이 송강호에게 잡히는 장면
- 신하균이 문 앞에서 망설일 때와
송강호가 신하균을 올라타고 죽이려 할 때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대변해 주는 그림자.

#6. 송강호의 죽음 _ 라스트 씬.
-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살겠다는 의지 보다는 자신이 이런 암살을 당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 더 강해서 판결문을 읽으려고 고개를 움직이며 씨발씨발 거리던 인간적인 모습. '그래, 나라도 저럴 테지....' 이 장면에서 섬뜩한 공포, 혹은 처절함을 느낀다는 친구들이 있는데 난 이 라스트에서 키득거리는 박찬욱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가장 코믹한 장면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제껏 죽은 딸의 복수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몸짓으로 목소리 내리깔고 갑빠 잡고 복수를 집행하던 송강호가 복수가 끝나고 긴장 풀고'사회로의 가증스러운 복귀'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느닷없이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을 만나 앞뒤로 칼 맞고 목구멍에 피가 가득 차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NO.3의 캐릭터 같은 표정과 말투로 '씨바, 도대체 왜? 이거 머야 응? ' 라며 가슴팍에 거꾸로 꽂힌 판결문을 읽으려고 고개를 꺽는 모습은 - 이 영화가 지금의 뒤틀린 사회를 그려내고 있다는 시점에서 볼 때-작은 일에만 목숨을 거는 우리 모습을 희화한 멋진 라스트 씬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야.

내가 들었던 송강호의 중얼거림의 내용은 이렇다
"살려달라는 게 아냐. 죽는 거 좋다 이거야. 씨바, 내가 왜 죽는지. 왜 이런 꼴을 당해야하는 지 누가 설명좀 해주라. . 니들은 도대체 뭐야 응? 군용 대검을 쓰네, 그 기집애가 말하던 테러리스트냐? 젠장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철가방 친구들이냐? 나도 사람 두엇 죽였지만 계획에 없던 철가방 빼고는 다 지들 죽는 이유 설명해줬고 지들도 왜 죽는 지 알고 죽었단 말야. 조까튼,... 말 좀 해봐. 이것봐 니들 말은 할 줄 아는 놈들이냐? 저기 잘라놓은 놈 친구들이냐? 아냐, 그럼 시체라도 수습해갈텐데. 젠장 가슴에 칼로 판결문 꽂는 폼을 보니 싸구려 영화는 많이 본 놈들 같은데 젠장, 이렇게 꽂아놓으면 정작 난 못 본단 말야 거꾸로 꽂아줘야 내가 읽을 수 있지. 아 씨바 존나 안보이네. 이거 도데체 뭐라고 적은 거야. 계획대로 복수 다 했는데. 이제 저 쓰레기봉투 파묻기만 하면 끝나는데 어디서 각본에도 없는 것들이 들이닥쳐서 지랄들이야. 후~~~ 다 잘했는데 뭐가 잘 못된 거야............."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송강호의 중얼거림은 살고 싶다거나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이 아니라 그런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투덜거림이었다는 거쉬지. 그러니까 감독은 이 장면에서 섬뜩한 공포보다는' 여러 부~운 우리 사는 게 이렇지요?'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 뭐, 아님 말고


*


그 마지막 장면을 가지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또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송강호가 당하는 꼴이 분명히 지가 했던 짓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거란 말이야. 질문과 대답을 무시해 버리고 들어오는 테러단의 대검은 무언가를 계속 말하려는 배두나를 무시하고 담요로 덮은 채 태워버렸던 송강호의 모습이고 목에 피가 차서 말을 못 하는 모양은 신하균이 두 눈 뚱그렇게 뜨고 곧 죽을 줄 알면서도 변명 한 마디 못하고 벌벌 떨던 모습과 맞닿아있단 말이야. 물론 송강호의 귀는 칼을 맞고서도 아주 잘 들을 수 있었지만 말 한마디 하지 않는 테러단과의 의사소통에는 의미가 없었고 장기밀매단에게 복부에 상처를 입은 신하균처럼 송강호도 테러단에게 하복부 앞/뒤에서 칼을 맞는 묘한 공통점까지......

이렇게 송강호는 지가 죽였던 방식 그대로
배두나처럼 대화를 거부당한 채,
신하균처럼 두 눈 뜨고 보면서 말 한마디 못하고,
철가방처럼 영문도 모른 채........................................ 그렇게 죽이고 그렇게 죽었는데
억울한 거는 지 죽을 때 뿐이라는 거지.

말 못 하는 신하균을 물속에 세워두고 '니 착한 놈인 거 다 안다.....'며 감정에 받힌 헛소리를 하지만 그 건 신하균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저의 극적인 복수극의 마무리를 장식하기 위한 대사..... 말하자면 연단에서 트로피를 들고서 감격에 겨워 날리는 수상소감 같은 거랄까? 배두나를 죽일 때도 극적인 복수감에 사로잡혀 정상적인 사고를 거부하고서 오버에 오버를 하며 자신을 위한 복수'극'을 연출하던 넘이 지 죽을 때가 되니까 정신이 퍼뜩 들면서 인간적인 감정 - '복수를 당하는 쪽'에서의 느낌을 체감하게 된 거야. 그렇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지가 하면 정당한 복수고 넘이 하면 천인공노할 살인이고 다른 넘이 죽으면 재수가 없거나 죄 값을 받는 거고 지가 죽으면 억울한 거라는 식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투덜투덜......
여기서 이 영화의 제목 '복수는 나의 것'의 숨은 의미.........' 복수는 나를 위한 것 '을 찾았다!!
면 과장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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