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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India_2012-3

안나 푸르나, ABC 트레킹

by babelfish 2014. 3. 12.

Annapurna Base Camp - ABC

  산을 좋아한다.  나고 자란 동네가 지리산과 가까웠던 덕에 천왕봉을 많이 올랐다. (10번까지는 세었는데 나중엔 잊어버렸...;;) 산악부 활동 같은 걸 하질 않아서 '산꾼'만큼은 아니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그래도 산깨나 타는 놈이었다. 어릴 때 TV에 히말라야 원정대 이야기 같은 게 나오면 친구들에게 "야, 나중에 너도 저런 데 갈 거냐?" 그런 말을 종종 듣곤 했었는데 난 그냥 시큰둥했다.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장비 사 모으고 아낀 용돈으로 여비 만들어 산 타는 것도 만만찮던 학생에게 TV 속 히말라야는 산을 좋아해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돈이 많아야 갈 수 있는 곳이었거든. 신 포도 야리던 여우처럼 " 뭔 산을 저기까지 가서 타냐 "하고 말았었는데 지금 난 히말라야를 향해 가고 있다.포카라에서 나야풀로 가는 덜컹거리는 버스 속에서 점점 다가오는 설산을 보고있자니 어린 시절의 내가 기억나면서 뭔가 먹먹하고 또 시원한 감정이 올라온다. 살다 보니 안나푸르나를 향해 배낭을 짊어지는 날이 오는구나. 세상 좀 더 진지하게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좀 들고 말이지.

  이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무려 히말라야를 오를 거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아니, 지금도 '세상의 지붕'을 오른다는 자각은 없다. 게다가 이런 여행객의 행색(?)으로. 아마 한국에서 등산준비하던 나의 경계심이 그대로 작동했다면 감히 엄두도 못 냈을 테지. 그런데  지금 난 인도 여행의 연장에서 별 다를 것도 없는 또 하나의 던전에 들어가는 정도의 가벼운 느낌. 뭐 어떻게든 되겠지. 때론 이런 무모함이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알아서 살아남자.

 1일 차 : 포카라 - 간드룩

놀이터 앞에서 나야풀 가는 법
1. 길 건너편에서 지나가는 봉고 중에 하리촉 행을 잡아탄다 (제로 킬로미터까지 가면 더 쉽게 잡을 수 있다.)
2. 하리 촉 or '바글룽 버스팕'에서 나야풀행 버스로 환승 (30분 간격 - 1시간 30분 소요)
3. 버스 내리면 내리막 ─▶ 우회전,  큰 길따라 죽 가면 다리 건너 첫 관문 비레단티.

놀이터 앞에서 잡아탄 봉고.('하리촉' 혹은 '바글룽~!'이라고 외치다 보면 서는 봉고가 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출근하는 현지인들과 함께 찌그러져 이동.

나야풀 가는 버스 잡아탈 하리촉.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한국인 분들과 택시쉐어 하고 싶었는데 당일 가는 분이 딱 두 분. 부자가 여행을 온 터라 아버님을 편히 모시고자 하는 아드님의 배려로 쉐어는 무산...;; 하긴 짐이랑 포터까지 감안하면 무리긴 하지. 좀 아쉽고 불편하지만 버스를 이용해 보자.

나야풀로 가는 버스, 금발 관광객들과 포터,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눈빛이 남자 상인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나야풀 초입에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설산.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 들어가면 이제 산길이 열리는 걸 알려주는 안내간판이 격하게 환영해준다.
저~ 멀리서 내려다보고있는 피쉬테일. 살짝 비틀려 보이는 이 각도가 짱이다.
첫 관문 비레단티(해발고도 1,025 M ) 여기서 퍼밋 확인.
퍼밋을 개시하는 트레킹 시점인 동시에 고레빠니와 간드룩의 갈림길이다.

 산에서 만난 첫 일행. 독일로 입양되었다가 다시 고국의 산을 찾아온 네팔 형과 그의 독일인 친구 두 명을 만나 첫날 같이 움직였다. 관광객이면서도 네팔 현지인인 묘한 포지션이란 게 참 재밌었는데 이 친구가 네팔 원어민이다 보니 롯지에서 통역을 도맡았다. 

 근데, 첫 롯지-사울리 바자르에서 주문한 점심이 이게 90분 만에 나왔다. @.@;;;  이러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몸이 퍼진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40분 이상 쉬면 몸이 리셋되어서 웜업부터 다시 페이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거 난감한 일일세~  식당 선택과 주문을 했던 네팔 친구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밥 값을 내겠다는 걸 'ㄴㄴ, 님 잘못 아님' 쿨한 척하며 후딱 먹고 출발. 

한 시간 반 만에 나온 정성가득한 베지 모모 !!

 

이것이 진정한 포터. 근데 내려가면서는 무슨 짐을 지고 가는 거야? 

 관광객들이 쏟아내는 쓰레기. 그나마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은 이렇게 아래로 보내진다. 등산객이 만드는 쓰레기가 저렇게나 많다는 것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 도시 여행에 비해 등산의 쓰레기는 적다. 아무래도 산이 좋아 오르는 사람이니 쓰레기를 줄이려는 마음 가짐이기도 하거니와 본인을 위해서도 짐을 줄이다 보니 그렇다. 그럼에도 먹고 마시다 보면 많은 쓰레기가 생겨난다. 6일 동안 나는 얼마나 산을 더럽혔나? 두 번의 온수 샤워, 산에서 구입한 병/캔 음료수가 셋, 14번의 식사. 줄이려고 노력해도 한계는 있기 마련 '착한 여행'은 만만치 않은 각오를 요구한다.

  이제 얼추 해발 고도 1,900M 이상이다. 아침에 택시를 타지 못했던 탓에 가뜩이나 늦었는데 점심시간이 길어져서 오늘 일정이 위태로운 상황. 벌써 세 시가 넘었는데 이거 좀 난감. 어쩔 수 없이 가다가 만나는 제일 가까운 롯지에서 쉬어야 하나? 이러면 일정이 망가지는데.... 그러고 있는데 지나가던 짚 한 대가 멈춰 서서 물어보지도 않은 흥정을 걸어온다. 100 NPR로 차량 진입가능한 곳까지(아마 '김채'였던 걸로 기억된다)가 주겠다.  네 명 일제히, 콜~

ㅎㅎ, 등산한다고 올랐는데 결국 짚을 타는구나. 하긴 김채에서 출발하는 일정도 있긴 하지. 

  짚에서 내려 한 시간 정도 걸어 도착한 롯지, 간드룩. ( 해발 1,940 M) 같이 움직였던 친구들은 푼힐 방향이어서 여기서 헤어지기로 했다. 근데 푼힐을 왜 이 경로로 타는 거야? 역방향 힘들 텐데. 그 독일 친구가 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유튭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 사진 한 장 안 찍어둔 게 서운하다. 그래도 반나절 같이 산 탔던 친구들인데.

포카라에서 버스 두 번 갈아타고 하룻만에 간드룩까지....  긴 하루였다.

 

 2일 차 : 간드룩 - 뱀부

 

 걸인의 시설, 왕후의 조망. 산에서의 첫 밤. 확실히 해 떨어진 후의 기온 급강하는 무섭다. 샤워하고 방까지 들어오는 그 짧은 시간에 턱이 떨릴 만큼 기온이 뚝! 떨어진다. 아직은 견딜만해서 침낭까지 풀진 않았는데 높이 올라가면 어떨까? 인도 여행용 침낭으로 버틸 수 있으려나....-.-;;; 

 

 

아침 날씨 좋다. 서두르자.

 맑은 날 이른 아침 산을 타면 산 머리에만 걸린 햇빛을 볼 수 있다. 부지런한 등산객만 볼 수 있는 풍경.

안나푸르나 싸우스, 히운출리, 마차푸차레

첫 날 점심 시간에 데어서 아침은 제일 빨리 될 것같은 누들 슾, 쉽게 말해서 라면.
짜이를 주문했는데......... 티백 짜이가 나왔다. 여긴 산이니까.

 

 식당 아주머니께서 찍어주신 사진. 핀은 나갔지만 뒷편 배경이 잘 나왔다. 현제, 킴릉 단다. (해발 2,170 M) 

 배도 채웠으니 이제 출발.....(응? 근데, 저리로 내려가라고????? 

 콤롱까지 제법 힘들게 올라왔는데 왜 길이 이렇게 곤두박질치지? 안나 푸르나를 향해 계속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응??? 그제서야 지도에 표기된 등고선을 자세히 살펴봤다. 아,... 이게 벰부까지 그러니까 하루 반나절 이상은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안나푸르나를 향해 접근하는 과정이구나.

 자전거 탈 때 쓰던 로그 기록 어플로 몇몇 포인트에서 GPS를 기록했는데 콤롱, 촘롱 정상 그리고 그 사이 낮은 계곡에서 찍었다. [ 2,219 -> 1,777 -> 2,219 -> 1,950 -> 2359 ] 이렇게 오르락, 다 까먹고 내리락, 다시 오른다. 뭔 고갯길 표고 차가 400M씩 되고 그러냐?

여기 어디 쯤에서 그 유명한 히말라야 몸 개그가 있었을 것같기도 하고.....;;

다시 꾸역꾸역 오르다 보니 아침 먹었던 콤롱과 얼추 비슷한 높이까지 올라왔다. 이런 식이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촘롱. 점심시간부턴 여지없이 상승기류. 산봉우리들은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새로 생긴 다리 덕에  이젠 쓰이지 않는 악명 높은 촘롱의 계단 길. 저길 내려가노라면 이걸 다시 오를 생각에 정말 피눈물이 난다. 

오~ 이 능파. 제법 깊이 들어왔다.

  촘롱에서 밥을 먹었던가??? 아니 배가 고프지 않아 콜라 (그 비싼 히말라야 콜라) 하나로 때운 것 같다. 장거리 운동-산행이나 사이클, 도보여행 같은-에선 지치기 전에 쉬고 배고프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게 철칙이다. 하지만 괜찮아, 배낭엔 에너지바도 많으니 여차하면 씹으면서 올라가도 되고. 이런저런 생각하며 우아하게 콜라를 마시며 지도를 보고 있는데 웬 포터 하나가 말을 걸어온다. 

"어디까지?"
"대충 뱀부 정도?"
"우린 히말라야까지 갈 거임"
"오~ 대단"
"어디서 오셨?"
"한쿡이라고 들어봤음?"
" 어, 우리 일행도 한쿡사람임"
" 그래??? " 
 그렇게 한국 등산객들과 일행이 되었다.

  그 무리 중 앞질러 갔다는 일행들 따라잡으러 부스터 온~~!! 이 아니라 고산증 발동 구간이니 한 걸을 한 걸음 꾹꾹 눌러가다 보니 시누와 부근에서 만났다. 꽤 많은 일행. 예닐곱 명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뱀부에서 묵기로 정하고 동건 군이 숙소 돌아다니며 흥정을 하는데 일행이 데려온 포터 하나가 말썽을 부린다. 자기 거래처 숙소에서 안 잔다고 내려가겠다는 것.  미친 거 아냐? 해발 2,300M에 혼자 올라간 등산객을 버리고 포터가 내려가겠다고? 이건 범죈데? 산행 마치고 내려가서 수소문해 보니 포터를 주선해 준 산촌 다람쥐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났었고 사람 찾으러 헬기 날려야 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는데 그건 아래쪽 난리고 산 위에선 이거 진짜 황당하고 막막했다. 다행히 우리가 묵었던 숙소의 사장님이 도반까지 수고해 주시고 도반에서는 또 다른 포터를 주선해 주셔서 일단락. 근데 그 괘씸한 포터, 손님이 만만해서 그런 걸까? 한국인 일행 만나지 못하고 그 친구 혼자였다면 일이 어떻게 되는 거였을까? 고용주인 등산객이 포터를 모셔야 하나? 이것 좀 큰 문제다.

 

 3일 차 : 뱀부 - MBC

얼추 3,000 고도쯤 되려나? 이제 산 머리가 희끗희끗해진다. 

  히말라야에서 지수군 뭘 챙겨 먹일랬는데 이것도 못 먹고 깨작대더니 먼저 출발하시란다.  불안한데.... 셋째 날부터 일행들 체력 차이가 두드러지면서 라인이 길어졌고 그중 전날 밤에 토하고 오전 내내 속이 미식거린다던 지수가 탈이 나서 제일 뒤로 처졌다. 내가 히말라까지 케어하다가 상황을 일행에게 전해야 해서 (근데 왜 혼자 합류한 내가 이걸 신경 쓰고 있지?) 데우랄리까지 부랴 부랴 치고 올라가니 친구 한 명만 기다리고 나머진 죄다 MBC로 출발해 버렸네? 아니 이 친구들 의리가 왜 이래!!  산행에서 중요한 게 본인의 체력 리듬인데 이걸 지수한테 맞추느라 좀 엉겨서 힘이 들었다. 제 체력관리도 못하면서 오지랖 부린 결과지 누굴 탓해? 게다가 길은 점점 히말라야는 눈 쌓인 산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꽉 흐린 하늘은 약하게 눈까지 뿌리고 있었다. 양~

데우랄리 바로 아래 눈 무데기. 이렇게 지저분한 이유가 무너진 눈이라 그런 건가....? 다른 이유는 없어 뵈는데, 눈사태? 

여기, 눈이 쏟아지는 길목이잖아. 헐퀴! (그리고 2020년 1월에 이 구간에서 눈사태로 한국 단체팀이 사고를 당한다)

  

 

 데우랄리,

 비닐봉지와 박스 테잎으로 급조한 신발 커버. 

 데우랄리 위부터 본격적인 눈길 시작.

 

 

 

 바닥 치는 체력을 레드불로 끌어올렷 !!

 눈발 너머 저~~ 기 MBC 끄트머리가 보인다. 해 떨어지고, 눈발 날려 불안했는데 겨우 도착했구나.

  

 4일 차 : MBC - ABC - 히말라야 

 아침에 일어나니 온 세상이 하얗다.

 커피믹스는 빵빵해졌고.

 동건 씨는 회비 정산. 계산은 철저하게, 증말 수고 많았심.

 신발 커버에서 스페츠로 업글.  ABC 공략할 그지 코스프레 완료!!!

아침 하늘이 얄궂다.  올라가는 동안 좀 개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눈 더 뿌려주심. 그래도 마챠푸차레는 보이네.

오옷, 정면에 안나푸르나다! (아냐, 저건 안나 남봉이야) 하늘이 잠깐 씩 열리기는 하는데, 아~ 쫌만 더..... ㅠ.ㅠ;;;

 

 

일행 모두에게 전파한 거지 발 싸게!!

눈 구름에 가렸지만 뒤엔 안나푸르나가 있........ 을 거야. 글켔지?
ABC에선 따끈하고 멀건 코코아 대짜 한 병으로 몸을 녹이고
옴짝달싹 못하고 갇힘.....ㅋ

 액자에 증명사진도 하나 끼워 넣고......ㅎㅎ

 ABC에서 안나푸르나를 보고 싶었지만 여기서 하룻밤 묵지 않는 한 무리무리무리. 다들 예까지 오른 것에 만족하며 쿨하게 하산 결정!

  

 

 이것이 히말라야 눈 녹은 물. 봐, 눈이 떨어져서 막 녹고 있잖아!!

  어제 지수랑 밥 먹었던 히말라야 식당에서 합류. 벌써 해가 넘어가려는데 어쩐지 분위기 업된 일행은 한 롯지 더 내려가기로 했고 나는 여기서 쉬기로 했다. 같이 움직이는 게 좋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리는 눈은 더 낮은 고도로 내려가면 비로 바뀔 수도 있다고. 여기서 해 질 녘에 맞는 비는 위험할 수도 있어. 아, 근데 그 말을 해준다는 걸 깜박했네...... -.-;;;;

 

 5일 차 :  히말라야 - 뉴브릿지

 

아침에 일어나니 온 세상이 더 하얗다.
눈 솔찮이 내렸네.

어우야~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풍경이 여름과 겨울이다.

그런데...... 아침 먹고 한참을 기다려도 올라오는 사람이 없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발자국 없는 길을 혼자 해쳐가야한다는 뜻이다. 이거 좀 무서움.

그나마 하늘은 열려서 다행. 근데, 저 산 그저께 볼 때랑 색이 많이 달라졌다?

 한참을 내려와 거의 도반에 다다를 무렵부턴 눈 쳐내면서 길 넓히고 캠도 찍을 여유가 생겼다.

 내려가면서 예상대로 눈은 비로 바뀌었고 등산 장비가 아니었던 옷은 젖어들어갔다. 도반에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렸지만 비는 계속 내린다. 어제 한 롯지 더 내려간 일행들을 따라잡을 요량으로 서둘렀는데 눈이랑 비가 자꾸 발목을 잡네.;;;

테이프를 조금 얻어 상그지 꼴이 되어버린 발싸개를 수선하고 다시 출발.
촘롱 올라가는 길. 올 때 공사중이던 다리가 완공이 되었다. 예아 !!
다리가 생겼어도 계단길이 1/3 정도는 남아있다. 촘롱길은 여전히 만만찮다.

 암만 계산해도 일행을 앞지른 것 같아 비도 피할 겸 촘롱에서 앉아 기다리는 중. 머리를 굴려보자. 얘들이 점심을 먹었다면 내 뒤에 있을 테고 아직 점심을 먹지 않고 여길 지나갔다면 이 정도 너르고 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흔치 않으니 여기서 쉬면서 뭐라도 먹었겠지? 그런 생각으로 살펴본 쓰레기통에 스니커즈 포장지가 없었다. 아직 안 지나간 게 확실해.

쓰레기가 산 아래서 가지고 온 게 아니야. 이 친구들 안 지나갔다. 범인은 아직 현장을 빠져나가지 못했어!

 근데, 비. 하~~ 해발 2,000M 넘는 높이에서 초봄에 이딴 비라니. 이거 안 좋다. 옷이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하는 건 결국 체온과 바람으로 말려가며 걷는 건데.... 오늘 숙소는 좀 일찍 잡아야 하려나? 그러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일행들이 왔다. 시누와에서 밥 먹느라 롯지에 들어가 있던 걸 놓치고 지나친 모양. 그래 그렇지, 집단이 이동은 빠를 수 있는데 엉덩이는 무겁지......ㅋ. 다행히 문을 열어놓은 가게를 만나 대형 비닐봉지를 개조해 비옷으로 만들어 입고 다시 출발 ~!

 

다행히 비는 잦아들었고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개인 하늘은 이런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다.

와~ 한 프레임 안에 4계절이 다 있는 것같아.

 

 

5박 6일동안 버틴 물통. 가격 대비 무게 대비 성능 우주 최강 !!
뉴브릿지, 롯지가 다 이렇지 뭐.
3일동안 신발을 보호해준 비닐 스페츠 해체.

 음식이 정말 맛있었던 롯지.

 

 6일 차 : 뉴브릿지 - 포카라

 

어제는 눈 구름 속에 숨었던 언니가 오늘은 분 바르고 배경깔고 인사 한다. 밀당 쩌는 풍요의 여신-안나푸르나 .......-.-;;;

 

 하산길은 조용했다. 지쳐서인지 내리막길이 주는 속도감을 즐기는 건지 다들 우다다 내려갔다. 풍광을 보면서 산을 타기엔 분명 하산길이 좋은데, 물리적으론 헛소리인 '등산보다 하산이 어렵다'는 말은 누적된 피로가 주는 긴장감 너프 탓이겠지. 지난 6일간 땀 흘렸던 산의 끝자락을 빠져나오는 순간 아쉬움. 시원함. 아주 좋아하던 드라마 (무려 주인공이 '나'인)가 끝나버린 것처럼 다들 이 산행의 마지막을 아쉬워했다. 

 

지칠 대로 지친 일행들 이견 없이 킴체에서 버스 탑승.
버슨데... 화물 트럭 아닌데....

 

  진 길에 빠진 트럭을 밀어내고 길 만들어 나야풀을 거쳐 포카라로 복귀. 5박 6일의 산행. 한국에 있으면서 백두대간 종주 같은 걸 안 해봤으니 6일이나 산 탄 경험은 없었다. 그런데 딱히 힘들지는 않다. 비교하자면 1월 지리산 종주보다 쉽다. 포터 없이 움직였어도 그렇다. 롯지에서 숙/식을 해결하니 짐의 무게와 부피가 많지 않고, 고산증 조심하느라 천천히 움직이면서 자기 호흡에 맞춰서 한 발짝씩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다음 롯지. 일몰 후 갑자기 기온 떨어지는 순간만 조심하면 추위도 별스럽지 않은 수준.  

 돌아가면 겨울 지리산 다시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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