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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Annapurna Circuit_2015

서킷 어라운드 #2. 마낭 ~ 쏘롱라.

by babelfish 2015. 6. 3.

 마낭(해발 3,540M).  Tal(해발 1,700M)에서부터 걷기 시작했으니 높이로는 거의 절반정도 오른 상황. 고도 적응과 체력 회복을 위해 하루 쉬는 곳.

 

▒ ▒ ▒ [02.11] 마낭 휴식 ▒ ▒ 

 

쉬는 날이라도 어김없이 눈은 일찍 떠지고. 시차적응 안 하는 게 산행엔 유리하다.

이제야 본 모습을 보여주는 안나푸르나 3봉.... 아니, 피크는 이 높이에선 아직 안 보이는 건가?

 

쉬는 날이라고 마냥 퍼질러져 있으면 안된다 조금이라도 고도를 올렸다가 내리기 위한 뒷동산 산책.

순해 보이긴 한데 길 막고 있으면 얘들 좀.... 무섭다.

여기 길도 비탈지고 눈 쌓여서 만만찮은데 조랑말들 놀라지 않게 빙 둘러가느라 이거 빈 몸인데도 숨이 차. 헉헉.

묵고 있는 숙소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저 멀리 가운데 하얀 봉우리가 틸리초 피크.

역시, 조망은 한 치라도 높은 곳에서 보는 게 멋지다.

 

동네 가게 벽면 한 컷. 주인장님 테트리스 내공이 상당하다.

 뒷동산 내려와선 마낭 쇼핑, 머리 보온이 부실했던 나는 비니를 샀고, 일행들 모두 스페츠와 스틱, 아이젠을 구입했다....? 응?? 여기까지 스페츠를 가지고 온 건 나뿐이야? 그리고 영국 4명 모두 이제사 아이젠을 샀다고? 여기까지 들고 오지 않아도 되는 거였어? 젠장, 이런 좋은 방법이!! 게다가 아직 비수기에 여러 상점들이 있는 큰 마을이어서 그런지 포카라보다 가격이 비싸지도 않았다. 아직 2015 버전의 가격이 적용되지 않았나 보다. 

 마낭에선 옹기종기 모여 난로에 신발 말리고 와인 한 잔 하고 스테이크 썰고 낙낙하게 하루를 보냈다. 캐나다에서 온 3 인팀. 인도에서 온 나 홀로 여성 트레커, 6명씩이나 뭉쳐 다니는 우리 팀. 썩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북적였던 롯지. 사장님은 기분이 좋으셨는지 숙박료 없이 음식값만 받으셨네. 사실 맘만 먹었으면 모든 롯지에서 '6명이서 저녁, 아침 먹을 테니 숙박료는 없는 걸로 합시다'라고 가격 흥정했었을 수도 있다. 근데 뭐 어디 시스템에 삥 뜯기는 돈도 아니고 현지 주민들 주머니로 바로 들어가는 돈 가지고 이 높은 곳에서 트레커와 공생하시는 분들에게까지 박하게 계산기 두드리고 싶진 않았어.

 여행이라는 쇼핑 기간 동안 대상에 따라서 돈을 쓰는 모드를 전환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경제 여건이 어려운 여행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멈칫하면서 지금 내가 뭔 퀘스트 박스를 열었구나 하는 촉이 온다. 선진국에서야 내가 뭐 어떻게 사용하든 시스템에서 알아서 잘 관리할 테니 딱히 고민 같은 거 할 필요 없이 맘 내키는 대로 해도 상관 없...... 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오지랖이지만 네팔같이 사회 시스템이 우울한 곳에선 조금 세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뭄바이에서도 이런 생각했었는데, 관광 산업이란 게 기본적으로 돈 쓸 사람들이 놀고 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원주민의 삶의 터전을 부수는 국가 주도의 폭력을 수반하기 마련이고 후진국일수록 그 과정이 일방적이다. 기존의 산업 구조를 바꾸고, 외부 자본이 경제 구조의 중심을 선점하고, 그 땅의 주인이면서도 자본과 정보력이 약한 현지인 대부분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판에서 중심에 설 기회를 잡지 못해 바깥쪽으로 밀려나거나 최하층 피고용자가 된다. 큰 규모의 개발이 이뤄지고 관광객이 몰려들어서 뭔가 복잡해지고 화려해졌지만 겉모습이 변한 만큼 현지 주민들의 삶까지 좋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까지 여유롭고 평화롭게 그리고 가난하게 살아왔다면 관광 산업이 커진 지금은 바쁘면서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여전히 상대적으로 가난하다. 판이 커지면서 실속은 빨대 꽂아놓은 외부 자본이 챙기고 빈부 격차가 커지는 현상.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에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이겠지만 조금이라도 원주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선 정부가 심판을 잘 봐야 하는데 가난한 나라에 큰돈 걸린 판에선 그게 쉽지 않겠지. 이것도 여타 시스템이 일으키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정치/시민의식 수준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나 유럽 여행에서는 이따위 오지랖 때문에 불편하진 않았었는데 지금 네팔 정치판은 무정부상태 수준. 결국 여행객 개개인이 시스템과 현지 주민들에게 지불하는 경비를 구분해서 배분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가 여행자에게도 윤리가 요구되는 이유다. 착한 여행, 조금 번거롭더라도 마음이 편한 여행이 좋지 않겠어?

 

▒ ▒ ▒ [02.12] 마낭 - 렡다르 ▒ ▒ 

 

 

Tal처럼, 마을을 벗어나며 돌아본 풍경이 참 아름다웠던 Manang

그래요, 우리는 쏘롱 라로 갈 거예요. 틸리초 안 가요. 못 가요.

높이 올라오니 안나푸르나 3봉 정상 부근이 보인다.

2,3,4 봉, 강가푸르나 파노라마 한 판 돌려주시고.

 40여분 쯤 걸었나? 갸누형이 핸드폰을 롯지에 두고 왔단다.....@.@ ;;  내심 좀 힘들었는데 잘됐다며 걍 앉아 쉬면서 기다림. 저 경력 많은 포터 형도 이런 실수를 하는구나 아니, NAM을 너무 챙기다 보니 정작 자기 걸 놓친 건가? 

기다리며 놀면 뭐 하나 카메라나 돌리자. 근데 영상은 잘 모르겠다. 사진 찍을 땐 보이던 전체적인 구도(?) 같은 게 그려지질 않는다. 그냥 사진만 찍는 게 나으려나? 

 

 

 이제 3,500M 이상의 고도,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막혀오는 높이다. 꾸역꾸역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천둥소리....? 뭐지? 어디야? 하고 둘러보는데 저~ 반대편  계곡에서 눈 구름이 피어오른다. 작은 눈사태가 났던 모양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작은 규모인데 소리는 상당히 컸다. 이번 겨울 누적 적설량이 많은 데다 요 며칠 따듯해서 녹기도 했을 테니 눈사태가 날 법도하지. 북사면을 걸을 땐 서두르지 말고 잘 살펴야 하겠다 싶으면서도 내가 저런 위험을 감지할 수 있으려나..... 생각하니 이거 좀 겁이 난다. 

근데 틸리초 피크는 강가푸르나보다 낮은데 어찌 저리 하얗지? 각도 빨인가?

으아, 이제 안나푸르나 3 정상이 보인다.

 

 

 Yak Kharka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엊저녁 머리를 감았던 다나가 전형적인 고산 증세를 보이면서 고통을 호소한 것. 톰이 우리에게 잠시, 30분 정도만 기다렸다가 같이 갈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영국 가이들이 우리와 같이 가고 싶었다기보단 일행 전체의 가이드 역할까지 하고 있는 갸누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었고, NAM과 나는 오늘 Letdar까지 가야 내일 일정에 무리가 없을 거라 가급적 해 떨어지기 전에 빨리 출발하고 싶었다. 베시사하르에서부터 같이 움직이긴 했지만 같은 팀이었다기보단 길에서 만난 동행자 정도였어서 굳이 그네들을 기다려줘야 할 의무 같은 건 없었지만 그래도 일주일 같이 산 타다 보니 정이 들었던 터라 살짝 갈등. 결국, 1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같이 출발. 근데 이게 과연 좋은 결정이었을까? 얘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위에서 합류하는 게 서로에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NAM의 의견이 사실은 보다 합리적인 판단이었겠지만 예서도 오지랖은 ㄴㄴ, 본인들 결정에 맡길 밖에.

 

 

 대부분의 롯지가 문을 닫아서 깜짝 놀랐던 Letdar. 

 

 

▒ ▒ ▒ [02.13] 렡다르 - 토롱패디 - 하이캠프 ▒ ▒ 

 그리고 13일 아침. 쏘롱라 전 하이캠프까지 가는 마지막 하루를 남겨두고 영국 커플이 결국 포기했다. 다나의 증상이 가볍지 않은 탓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 그리고 어쩐지 샘과 닐까지 동반 포기. 커플이야 같이 포기하는 거 당연하다 하겠는데 형들은 왜??? 힘들었었나? 하긴 닐은 여기까지도 많이 힘들어하며 올라오긴 했다. 그리고 남은 이틀은 지금까지 보다 훨씬 더 힘들 테니 트레킹만을 목적으로 온 등산객이 아닌 장기 여행자였던 그들은 쿨하게 내려가기로 결정을 해버린 모양이다. 아쉽지만 안녕. 그동안 네 명의 가이드 역할도 겸했던 NAM이 고용한 포터-갸누에게 적지 않은 팁을 모아주고는 내려가버렸다. 여기까지 함께 고생하고 올라와서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는 네명을 보고 있자니 우리에게 남은 체력이 좀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어쩌겠어, 여행이란 게 자기 짐 자기가 지고 가는 거지 뭐. 우리 포카라에서 만날 수 있겠지?

Letdar의 풍광은 강가푸르나. 이제 해발고도 4,000M 이상.

철제 사다리 + 눈길 + 흙길. 가지고 간 아이젠이 신고 벗기가 불편한 형태여서 고생깨나 했다.

 오르면서 보니 서킷어라운드 코스 - 토롱 패디까지의 길이 발아래 계곡, 그러니까 마샹디 강 상류를 따라 오르는 길이었나 보다. 이 눈들이 녹아 (바라나시로 가는 건 아니지만) 갠지스강 하류에서 합류해서 뱅골만으로 나간다. 그러니까 지금 위치는 갠지스로 흘러드는 지류 중 하나인 마샹디의 최상류. 힌두 신자님들 그 강물을 그렇게나 신성시하는 거에 견주어보면 지금 여긴 당장 쉬바 신이라도 영접할 만한 곳이란 말이다. 아, 안나푸르나는 락슈미 나와바리 였던가?

야크, 스테이크로 잘 만들면 괜츈.

마낭에선 보이지도 않던 3봉 뚜렷하게 보인다. 참 높이도 올라왔다.

포카라 숙소에서 보이던 마챠푸차레와 안나푸르나 싸우스

 같은 봉우리는 아니지만 산 아래 마을에서 저렇게 까마득하게 높고 멀어 보이던 봉우리들을 4,000M 이상의 고도의 턱밑까지 올라와서 눈높이로  마주하게 되면 그 느낌이 정말 강하다. 한 2~3일 더 올라가면 정상 정복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니까.  지구를 네모난 건물, 지하철, 복잡한 도로로 이루어진 행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서울 살이. 바깥으로 나가봐야 한강과 야트막한 산이 전부였던 촌놈에게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뭐랄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느낌? 

이런 광경은 뇌리에 박혀서 지워지지 않는다. - 안나푸르나 3봉과 강가푸르나.

높은 고도임에도 남사면 길의 눈은 절반정도 녹아있다. 걷기 참 애매하게.......-.-;;;

토롱 패디.

 

간단히 식사하고 조금 쉬고.

이제 마지막, 하나 남은 롯지 - 하이캠프로.

 아오, 정말 극악의 경사. '기시감?' 이런 거 전에 겪어본 적이 있다. 자전거로 수종사 올라가는 길 초입, 가파른 경사를 마주했을 때 딱 이런 느낌이었다. '이건 벽이잖아, 벽 말고 길을 내놓으라고 ~!' 아래에서 보면 욕 나오고 올라가면 토 나오는 오르막.

안나푸르나 3, 강가푸르나는 이제 빠염~, 옆에 뾰족한 봉우리가 '출루 이스트' 인가?

 

▒ ▒ ▒ [02.14] 하이캠프 - 쏘롱라  ▒ ▒ 

 드디어 쏘롱 라 넘는 날. 출발하기 전 새벽, 화장실 가느라 고작 계단 3발짝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숨이 차......ㅋㅋ. 뭐 어떻게든 넘어갈 고갯길 이겠지만 새벽길 나서는데 어지간히 긴장했나 보다. 품에 넣어둔 카메라 꺼낼 생각도 못하고 해가 떠서야 몇 컷. 이렇게 천천히 걸어서 오늘 안에 저 고개를 넘어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천천히 걸었다. 계산해서 속력을 맞춘 건 아니고 그 정도가 한계. 몸이 가장 힘들었던 하루. 지금껏 힘들었던 여러 날 중 하나가 아니라 그냥 second to none 으루다가 빡쌨던 날. 옅은 산소농도, 고산증, 언제 길을 막아버릴지 알 수 없는 날씨. 뾰족한 해법이 있을 리가 없는 문제들이어서 묵묵히 올라갈 밖에. 산 아래에서의 여행이 처음 겪는 문화와 부딪히는 충격을 즐기는 과정이라면 이곳은 경험해보지 못한 자연, 한계까지 몰린 나와 싸우는 환경이다. 반사광과 햇볕에 타고 바람에 얼어 벗겨진 콧잔등, 방수 기능의 중등산화에 왁스까지 발랐지만 압력을 못 견디고 점점 젖어들어가며 무거워지는 신발, 자다가 슬며시 찾아오는 고산 증세에 숨이 막혀 놀라 깨기도 하는, 여행이라기보다는 모험에 가까운 여정. 나 이런 거 좋아하잖아. 까짓 거 힘들어 봤자지. 설마 죽기야 하겠어? 너무 장담하진 말고. 다 왔다, 쫄지 마라. 자전거로 다진 체력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조절 가능했던 변수가 하나 있긴 있었구나. 배낭 무게! 1월에 워커 신고 눈 덮인 지리산 종주하면서 70L 배낭에 텐트, 버너 코펠 다 넣어 다녔던 왕년 떠올리면서 '뭐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어? 필요한 건 다 가져가자'  그때가 20년 전이야 강산이 두 번 변했다고.  그래서 13~4 kg 정도였던 배낭. 서킷 배낭 멕시멈이 10kg이라 했던가? 4kg만 덜어냈어도 그렇게 힘이 들진 않았을 텐데. '네가 지고 갈 수 없는 건 네게 필요한 게 아니다' 암만요. 그렇다고 5,000M 고지에 쓰레기를 버리고 갈 순 없잖아요. 여기까지 왔으니 이대로 끝을 보자. 이 고갯길을 살아생전에 다시 넘으러 올 진 모르겠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때는 40L-8kg 배낭으로 좀 가볍게 다니는 것도 좋겠네.

다행히 날씨는 정말 좋다.

 

 뜬금없는 휴게소. 성수기엔 찻집일 텐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창고 같은 움막. 바람 피하고 쉴 수 있는 설산의 오아시스.

 

경사가 살짝 꺾인 게 정상 부근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오고 있어.

뒤쪽 봉우리들은 이제 하나둘씩 시야에서 사라지고,

드디어!!

THORUNG LA

건너편의 멋진 산세는 무스탕 지역.

이 정도 오바는 괜찮잖아.

일행들과 인증샷 찍고 쉬고 나 자신을 대견해하는 사이 세월호 기억 팔찌 하나 묶어두고 왔다.

13초짜리 GPS 로그 기록으로 고도 인증. ( ㅎㅎ

왜 이렇게 걸음이 느리냐고 물어보시기 전에 알아두셔야 할 것은 해발 5,000M의 산소 농도는 해수면 기준 절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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