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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Annapurna Circuit_2015

서킷 어라운드 #1. 베시사하르 ~ 마낭

by babelfish 2015. 4. 16.

일행이 생겼다.

 어제 숙소에서 다른 여행객들과 수다 떨던 중에 동생들이 알려준 소식. "어, 저 누나도 서킷 가신데요" 그렇게 아침 택시비 쉐어나 하기로 하고 그 누나(이하 NAM, 포터는 갸누)와 아침 약속을 잡았다. 포카라에서부터 일행이 생기는구나. 아침에 한 30분 일찍 일어나서 버스 타러 걸어갈 생각이었는데 뭐, 우아하게 택시 한 번 타볼까?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다르게 시작되네. 예상, 계획 그딴 거 뭐? 

여긴 네팔이라고.

▒ ▒ ▒ [02.06] 포카라 출발 - 베시사하르 - 딸. ▒ ▒ 

 베시사하르에서 퍼밋 개시하면서 만난 7명이 모여 짚 한 대에 올랐다. NAM과 포터 그리고 4 명의 영국친구 (톰/다나,샘/닐)어디까지 짚으로 올라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그래, 일단 Chamche까지 같이 타고 가보자.

 

아침 일찍 나섰지만 반나절 차로 이동해서인 지 점심 먹기가 좀 머쓱하다. 뭘 했다고 밥을 먹나.....-.-;

 

 

 앞 차에서 문제가 생겨 길 막혔다. 문제란 게 차량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다. 운반하던 페인트 통이 차 안에서 엎어져 쏟아진 것. 근데 짜증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다들 킬킬 거리며 '야, 뺑끼통 하나 관리 못해서 이 사달을 내냐?' 이런 분위기로 수습하고 있다. 하긴, 길 막혀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이 사람들 크게 손해볼 건 없다. 해 떨어질 걱정에 우리만 답답하지.ㅋㅋ  기억하시라. 'No Problem'은  '그건 내 문제 아님~'이란 뜻이다.

이런 폭포가 나오면(이게 뭐라고) 포인트라며 차 세워서 사진찍으라고 그러면서 아주 천천히 간다. 그럽시다, 까짓 거.

근데 뭐, 파노라마 돌려보니 나름 괜츈? 이걸 10,000픽셀이 넘는 큰 사이즈로 보면 썩 그럴싸하다. 사진은 판형!!

하늘은 좀 거뭇거뭇해졌고. 시간은 지체되었고,

어쩔 수 없이 타고 있던 짚으로 Tal까지 와버렸다. 먼지 풀풀 날리는 어두운 길을 지프 차량이랑 섞여 걷고 싶진 않았어. 예정했던 롯지는 아니었지만 Tal 은 하루 묵기에 좋은 예쁜 마을.

  산에서 구할 수 있는 잠자리는 이런 정도다. [24시]에서나 보던 파키스탄 어디쯤의 테러범들 숙소 같은 분위기.

 

 

 

▒ ▒ ▒ [02.07] 딸 - 따라파니 - 띠망 ▒ ▒ 

 

새벽 색감이 썩 그럴싸하잖아?

 

마을 속에 있을 때보다 나오면서 멀리서 보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마을 Tal  

그리고, 이제야 시작되는 본격적인 트레킹. 저~ 기 멀리 보이는 게 람중 히말인가? 방향은 맞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

 

 

이런 산길을 배낭 메고서 유유자적 오를 수 있다는 건 산 좋아하는 사람에겐 축복과도 같은 호사다.

그런데, 아직 길이 차가 다니는 길 - 지프 덕분에 트레킹 코스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더니. 그나마 이런 길은 좀 나은데

이런 발목 꺾어지는 오프로드는 걷기 좀 힘들다.

 

막대가 둘 뿐이긴 하지만 우리네 정낭과 비슷한 출입문.

 

 

아직 낮은 고도라 우리나라 산세와 비슷한 풍경도 보이지 말입니다.

빼박 물레방아 자린데..... 어? 이거 수력 발전소다!

2일 차 롯지, 설산이 병풍처럼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Timang.

올라갈수록 풍광이 멋지다. 고작 2일 차인데 이 정도라니. 확실히 ABC보다 좋아.

일행 6명이 들이닥치자 사랑방 난로에 불 때 주셔서 편하게 쉬었던 롯지.

뗌뚝을 부탁했더니 툭바와 뗌뚝을 섞은 퓨전 음식이 나왔다. 이걸 뭐라 부르지? 툭뗌뚝?

주방에선 저렇게 장작을 때는데 저 열기를 난방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날려버린다.... 새삼 온돌 짱짱맨.

 

 

▒ ▒ ▒ [02.08] 띠망 - 차메 - 탈레쿠 ▒ ▒ 

 

 

3일 차 아침. 하늘이 옅은 구름에 가려져있다. 

 정면, 그러니까 동쪽으로 보이는 산이..... 마나슬루? 히말출리? 에이, 설마 여기서 그게 뵈겠어?..... 아니 잠깐, 티망에서 마나슬루 1이나 안나푸르나 2나 직선거리 별 차이 없잖아. 진짜 저게 마나슬루 1 일 수도 있겠네. 날씨가 맑았으면 주변 봉우리들 확인하면서 오를 수 있었을 텐데 허여멀건 하늘이 아쉽다.

 

 체크 포인트 Koto....??? 그러고 보니 베시사하르에서 개시 후 첫 체크 포인트다. 아, 부불레 체크 포인트는 짚으로 이동하느라 그냥 지나쳐버렸구나. 얘들 시스템 참 허술해. 그건 그렇고 하늘, 보통 11:00 정도 되면 상승기류가 옅은 구름을 밀어내고 파란 하늘을 보여주는데 아직 하늘이 허옇다. 이거 좀 불안하다.

 

 

 

 

 

3일 차 숙소, Thaleku.

 예정보다 썩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원래 생각으론 마낭 전에 하루, 마낭 후에 하이캠프 전에 또 한 번. 쏘롱라 넘기 전에 3일 정도 맘에 드는 곳에서 퍼질러져 가면서 쉬엄쉬엄 올라갈 예정이었는데 날씨가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등을 떠민다. 올라오면서 만난 내려오는 팀들(서킷을 역방향으로 도는 게 아니라 마낭/쏘롱 패디에서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 포기하고 내려오는)에게 눈 때문에 길이 열릴 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편하게 쉬질 못했다. 가능하면 시간을 아껴 두었다가 기다리게 되더라도 마낭 위에서 시간을 쓰기 위해선 2~3일 정도의 여유를 만들어두어야 한다는 강박. 그래서 힘들여 속력을 내.... 지는 못하지만 쉬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계속 이동하는 중이다. 무탈하게 쏘롱라를 넘고 나서야 해 본 간사한 생각이지만 하루만 더 여유 있게 올랐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근데 내일 일을 어찌 알아.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이라 생각되는 방향으로 가는 거지. 

 그런 와중에 눈발이 날렸다. 헐퀴!  21:00 쯤? 플래쉬로 하늘을 비춰보니 썩 굵은 눈발이 남의 속도 모르고 예쁘게 쏟아진다. 젠장, 어쩐지 하루 종일 흐리더만. 내일 날씨가 어떠려나? 이 눈이 저 위의 산 길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걱정해 봐야 달라질 것은 없지만 이런 오밤중엔 육포나 뜯으면서 그 걱정하는 거 말곤 달리 할 게 없네?

 

▒ ▒ ▒ [02.09] 탈레쿠 - 어퍼피상  ▒ ▒ 

 

 

감사하게도 활짝 열린 하늘.

그런데 저~ 기 산 끄트머리에 눈이 어제보다 조금 더 많아진 것 같긴 하다. 기분 탓인가?

오옷, 안나푸르나 2봉!

 

 포터 포함 7명의 집단이지만 영국 친구 4명은 다소 거리를 두고 움직였고 NAM과 나는 거의 같이 걸었다. 보통 장거리 산행에선 본인의 체력을 기준으로 각자의 빠르기를 유지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당연히 그 속력이 달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일행이라고 해봐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잘 따라오고 있는지, 혹여 어떤 문제라도 생기지 않았는지 체크하는 정도다. 그런데 NAM과는 거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걸었다. 평소에 산을 타 본일이 없다는 그러니까 생에 첫 등산이 안나푸르나 서킷 어라운드라고? NAM과 포터 없이 체력에 비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나는 움직임이 비슷했다. 그래도 가끔씩 떨어져 혼자 걷기를 즐기는 건 빼놓을 수 없는 산행의 즐거움.

 

 촉촉한 땅바닥, 앞서 간 발자국, 처음 보는 하늘, 그래도 낯익은 길.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김동률은 이 길이 살짝 젖어있을지, 앞선 트레커의 발자국이 길을 알려주고 있을 지, 하늘 빛은 낯설지만 편안한 이 길을 걷는 내가 그 노래를 귀에 꽂고 있을 지 어떻게 알고 저런 신통방통한 가사를 썼을까. 사랑에 빠지면 세상 모든 사랑 노래가 자기 노래가 된다더니 지금 '출발'은 내 노래다.

 혼자 걷다가 만난 작은 산사태로 끊긴 길. 더 크게 무너졌더라면 저 눈을 헤집고 나갈 길이 열릴 때까지 아래 롯지에서 버티든지 발걸음을 돌려 내려가든지 했어야 할 테지.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눈무지다. 아직은 운이 나쁘지 않은 편.

무릎 정도의 높이다. 이제 눈길, 신발이 젖어들어간다.

점심을 먹었던 Dhukur pokhari

 트레커들에게 추천하는 주식은 '달밧'이다. 현지인들이 주로 먹는 음식이다 보니 고산증을 이겨내는데 도움도 되거니와 조리하는데 필요한 열량이 적어서 환경에도 영향을 덜 끼친다는 이유로 그렇다. 근데 달밧이 저렴하지는 않네? 이 가격이 맞나? 야채 볶음밥보다야 비싼 게 맞겠지만 버섯-치즈-참치 볶음밥이랑 같은 가격이라고....???? 흠~

 

Paungda Danda 암벽 북사면이 완전히 눈에 덮였다. 멋지구요.

  점심 식사를 기다리는데 가족 같아 뵈는 4명이 올라왔다. 리버풀 주민. 일행 중 '닐'네 집이 리버풀인데....! 이야기 나누는 거 보니 어지간히 가까운 동네 주민인 것 같다. 헐~ 예까지 와서 지역구 주민을 만나다니 멋진데? 엄마와 딸, 엄마의 남친(John 형), 딸의 남친. 구성마저 쏘 스윗한 유쾌한 풰밀리. 축구 이야기, 나 같은 동양 사람들은 리버풀을 영국 지명이라기보단 축구 구단의 이름으로 더 자주 접한다는 걸 그들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 yeh~ for KOREAN, LIVERPOOL is football team"

다음 시즌이면 미국으로 튈 Gerrard 가지고 드립을 치려다가 접었다.........-.-;;; 잘 참았어

 

 

산 아래에서 까마득하게 보이던 봉우리들이 이제 제법 눈앞까지 왔다.

 

그리고, 드디어 만나게 되는 안나푸르나 제3봉의 끝자락.

 

마낭의 코 앞.  어퍼 피상.

 

마을에서도 꽤나 높은 곳에 위치한 숙소, 뷰 좋은 곳을 찾아가는 갸누 형..... 고맙긴 한데 이거 힘들다고!

이렇게 높은 곳이 이렇게나 깔끔한 롯지가? 싶을 만큼 정갈한 숙소. 똘망 똘망한 애기 '꾸지'. 똘똘하게 서빙하는 게 이뻐 NAM은 가지고 간 연필을 한 다스나 줘버렸다. 짐도 줄이고 좋잖아.

영국 형들, 샘과 닐. 분위기 오진다.

 웨일즈 촌구석에서 나고 자랐다는 닐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다고 한다. 어릴 땐 아주 소수의 민족들만 쓰는 언어를 썼다고 하는데 (소수민족 언어라 그랬지만 웨일즈라니 웨일즈어를 그렇게 말한 게 아닐까?) 그래서인지 나와 이야기할 땐 내 짧은 영어를 이해하려고 무척이나 열심히 들었고 내가 적당한 어휘를 떠올리지 못해 답답해할 땐 "편하게 해라 난 한국어 하나도 모른다"며 영어 울렁증을 달래주었다. 영국사람들끼리 대화할 때 쓰는 영어와 나에게 쓰는 영어의 어휘와 말의 빠르기가 달랐다. 배려할 줄 아는 브리튼 가이.

 

 

▒ ▒ ▒ [02.10] 어퍼피상 - 마낭 ▒ ▒ 

좀 귀찮더라도 새벽에 나가서 새초롬한 산의 모습을 보는 거 강추!!

근데 이제 좀 춥다.

숙소 바로 뒤 작은 사원. 간단한 아침 산책.

이게 안나푸르나 2봉인가 4봉인가? 보는 각도마다 다른 모양새여서 산세를 읽기가 힘들다.

2봉이네. 어퍼 피상의 풍광은 안나푸르나 2봉이구나.

 

안나 2봉을 오르다 산에 잠드신 김용규, 정갑용 님의 추모비.

 사진 속 독일인 부부와 짧은 대화.
"길이 안 열릴 수도 있데, 님들 그거 앎?"
"ㅇㅇ, 그래도 가봐야지 뭐."
"오늘 저녁은 어디? 마낭?"
"당연 마낭. 마낭 다음 님들 계획은 어찌 됨?"
"'케세라세라' 지 뭐~"
그렇잖아, 그냥 가보는 거지. 산이 허락하면 오르는 거고 아니면 말고.

 

눈으로 길이 막히면 저 정낭 같은 봉 3개가 차단기처럼 길을 막겠지. 뭔가 간당 간당하게 목숨 부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떻게 삶았길래 껍질이 이렇게나 잘 까지지? 가격도 잘 못 보고, 계란 하나 시키면 둘 주는 것도 모르고 어이없이 많이 주문했던 Humde  - 삶은 계란을 만원 어치나 사버렸네. 옴마야~

마낭이 멀지 않았다, 히믈내요 !

 

근데,....

해가,..... 진다?

 

 

 

건너편 기괴한 풍경에도 빛이 사라지고 있어.

하나씩 보이는 마을 조형물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체력은 얼마 안 남았고 쌓인 눈이 절반 정도 덮여있어 걷기가 참 애매하고 불편한 길. 발목은 꺾이고, 신발은 젖어들고. 하~ 참.

마낭 마을 입구.

  마지막(은 아니지만) 힘을 짜내 도달한 마낭! 

 우아~~ 드디어 마낭까지 왔다. 산 아래에서 코스를 선택할 때 흔히들 하는 말이다. [ABC랑 비교해서 시간만 허락한다면 서킷이 월등히 좋은데 기상 여건이 좋지 않아 마낭 까지만 가더라도 서킷이 더 좋아요.] 백퍼 동의한다.

 

 해 지고난 롯지에선 저렇게 저녁 먹고서 난롯가에 둘러앉아 신발 말리는 게 일이다. 그러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 오늘 오후부터 힘들어하던 샘의 안부를 묻고, 영국에선 담배값이 2,000루피가 넘는다는 말에 화(?)를 내던 갸뉴를 달래기도 하고,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의 영국 버전에선 호랑이 대신 유령이 온다고? 찢어진 점퍼를 덕테잎으로 땜빵해녾은 톰에게 '너 덕테잎 가지고 다니는 거보니까 장기 여행자구나' 라며 나도 긴 여행 해봤다는 티를 내고, 한국에선 첫인사가 'How old are you?' 랬더니 깜짝 놀라는 가이들에게 '울 나라는 짧은 시간에 워낙 다이나믹한 역사를 겪어서 세대마다의 관점/이슈가 다르다. 한국에서 나이가 몇이냐고 묻는 건 어떤 세대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의미이다' 이따구 미화 쩌는 구라도 치고 (-.-;; 어색했던 일행에서 조금씩 익숙한 동행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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