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 나오면서 나름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당초 고아로 내려갈 예정이었고 티켓도 구해두었는데..... 계획 변경!
1. 대도시 두 개 연짱으로 둘러봤더니 지친다. 좀 쉬자.
2. 라자흐스탄 보고 가자.
3. 극 성수기에 휴양지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바가지 뒤집어쓸 필요 없지.
하여, 내린 결정은, 아우랑가바드 거쳐 디우로. 디우에서 쉬면서 생각쫌 해볼라꼬. 계획파탄, 주먹구구의 시작이다. 또, 밤을 달려 뭄바이 탈출. 이번에는 12.31 밤이네 크리스마스에 이어 송구영신도 기차에서 보내네.
Aurangabad
새벽, 아우랑가바드 역에 내리니 뭐 아무것도 없다. 한적한 인도 기차역의 새벽은 이렇구나.
인도에서 아무것도 없는 새벽은 위험하다. 사람이 위험할 수도 있고, 막다른 골목에서 으르렁대는 동네 개들도 진땀 나게 한다. 다행히 시가지에서 멀지 않으니 걸어서 이동. 같은 기차를 타고 온 스위츠, 일본 친구 이렇게 셋이서 숙소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와중에 인도 여행 중 개쉑들과의 첫 조우. 구석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찾아보겠다고 혼자 잠시 빠졌다가 개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온다는 걸 눈치채고 잰걸음으로 빠져나가는 데 얼레? 막다른 골목에서 딱! 갇혀버렸다. '조때따...' 는 싸~한 느낌. 개가 세 마리, 이 쉑들이랑 싸워서 질 건 아니겠지만 이거 한 방이라도 물리면 여행 스탑. 강제 귀국. 불량배나 사기꾼보다 더 위험한 게 인도의 개쉑들이다. 눈싸움하면서 한쪽 벽으로 붙어 거리 유지하고 슬금슬금 움직여 겨우 빠져나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마 인도여행 3개월 중 가장 위험한 순간이 아니었다 싶다.
두 명은 이런 내 상황은 알지 못한 채 계속 숙소 스켄 중. 하지만 아침 6시에 문 열어놓은 숙소는 아주 비쌌거나 대부분 직원들도 자고 있었고 몇 군데 둘러보고서 하릴없이 뚜벅뚜벅하던 중에 같은 기차에서 내린 여자 두 명이 인사를 건네온다.
"니혼진 데스까~?" 바깥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일본인이냐는 소리 자주 듣는데 여기서도 여지없다.
"이이에, 강꼬꾸징 데스. 코노 미도리노 자께또 히또와 니혼진 데스"
소싯적부터 오타쿠 질을 한 탓에 아는 단어는 몇 개 없어도 그 몇 단어의 발음/인토네이션은 썩 원어민스럽다.
그러나 간단한 인사를 벗어나면 밑천이 털리는 게 문제.
일본 말 잘하시네요/
아, 이게 다 입니다. 그럼..... ㅌㅌ /
다행히 그나마 저렴한 숙소를 찾았고, 일단 예약, 식사 후 체크인. 바로 체크인해버리면 24시간 룰 때문에 아웃할 때 꼭두새벽에 방 빼야 해서 약간 편법. 이 편법을 알려준 게 카운터 직원.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실랑이하기 싫으니 일 좀 편하게 하자는 것 같던데.....ㅎㅎ
식사 마치고 엘로라 석굴 사원으로,
셋이서 이동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뜬금없이 베아뜨가 물어본다.
"늬네 대통령 여자가 됐더라?"
아~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치미는 깊은 빡침 .........-.-)++
"그거 독재자의 딸과 인권 변호사의 싸움에서 진 거야!!"
"야, 그게 가능해?"
"그게 토론이 불가능한 으르신들의 집단 스톡홀름 신드롬에다가 미래가 아닌 과거의 추억에 투표. 대통령이 아니라 공주를..."
짧은 영어에 방언 터트리는 건 알코올과 흥분이라더니 그 경험을 여기서 할 줄이야.
터미널 상가에서 오렌지 몇 알이랑 물을 사고 버스로 엘로라 도착, 여긴 넓으니 각자 알아서 요령 껏 둘러보고 17:00 카일리시 앞에서 모이자. 그 정도 택만 정해놓으면 OK. 외쿡 애들이랑 여행지에서 만나면 이렇게 쿨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참 편하다.
그래서인가? 딱히 아름답다거나 비례나 대칭이 훌륭해 보이지는 않지만,
이거
통짜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다는 카일리시 사원. 150년 걸렸댔나? 정말 대단하긴 하다..........쉬바.
그 많은 석굴사원보다 더 좋았던 건 이렇게 퍼질러 앉아 내려다보는 시간. 이런 경치는 어디서 봐도 참 좋다.
사원 뒷동산의 조망, 해 질 녘 막차 시간이 간당간당하긴 한데 불안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노을을 한 번 노려볼만하다.
룸 쉐어는 일본 친구랑 했다. 아무래도 동양인 둘을 세트로 묶는 게 자연스러웠는지 스위스 보이가 쿨하게 독방을 선택. 저녁에 룸메랑 간단히 와인이나 먹기로 하고 알콜 추진. 여긴 술 구하는 것도 뭔 마약거래 분위기라 생전 처음 보는 공업용 알코올 같은 위스키를 과자 부스러기랑 펼쳐놓고 한 잔. 아까 선거 이야기할 때 옆에서 한 마디 안 하고 듣고만 있던 이 친구가 영어 이야기를 꺼낸다.
"확실히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
"그래? 우리가 발음이 좀 더 자유롭긴 한데,... 난 잘 모르겠다."
"넌 영어를 어디서 배웠니?"
"하이스쿨"
"음..."
오타쿠답게 일본 연예인 이야기, 망가 이야기.... 길에서 스쳐 지나는 게 아닌 룸 쉐어는 짧은 어휘에도 불구하고 대화 같은 걸 하게 된다. 그런데 젠장, 마신 술과 거리에서 먹은 음식이 탈 나면서 배탈 크리. 새벽부터 오전까지 짧지만 굵게 죽다 살았다. 다음 날 아침에도 컨디션은 망~, 그래도 여기 더 머물 이유는 없었던 탓에 두 청년이랑 빠이빠이하고 배낭 메고 비실비실 나서서,
연 이틀 불교/힌두 석굴사원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아쉬운 보존상태. 그래도 여긴 이교도의 테러는 피해 비교적 온전한 모습인데 어느 굴에선 박쥐 떼가 나오질 않나, 이렇게 대단한 유산관리의 핵심이 고작 입장료 정산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서인지...... 스스로의 시스템만으로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그 고운 피부와 선을 지키고 있는 석굴암 본존불이 보고 싶어 졌다.
아잔타를 둘러보면서 썩 불편했다. 속은 아직 부글거리지 늘 그렇듯 뻔뻔하게 새치기하는 가족들(아놔, 늬들은 애들 앞에서 지킬 체통이란 것도 없는 거냐?) 1년 전의 정보를 기록한 가이드북 믿었다가 짐 맡겨주는 서비스 놓쳐 높은 곳까지 이고 지고 간 배낭.(인도 여행자라면 방랑기 카페에서 최신정보를 확인할 것)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아주 넓은 석굴사원 단지이긴 하지만 개별 석굴은 좁은데 많은 사람들이 안내 시스템 없이 막줄 서서 관람하다 보니 뿜어내는 채취에 무질서에 짜증이 날 지경. 도대체 왜 이런 거지?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 오늘 토요일이구나. 그래, 여기 사람도 그 나름의 문화생활이 있겠....... 지? 지금껏 [외국인은 관광객, 인도 사람들은 생활인] 딱 그렇게 나눠서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경복궁을 가듯 이 사람들도 자신들의 유적지를 찾는구나. 그 당연한 것을 생각 못했네. 그래서, 이런 북적거림을 피하려면 나도 주말엔 쉬어야겠다. [주 5 일제 여행을 ]해볼까....?
아잔타에서 잘가온행 버스를 타는 건 간단하다. 아까 내렸던 곳에서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잘가온~!" 하고 외치다 보면 서는 버스가 있다.
그거 잡아 타면 OK. 그 정도 스킬로 버스 잡아타면 차장 아저씨도 요금 바가지 안 씌운다...ㅎㅎ
아잔타에서 암다바드로 가기 위해 잘가온에서 1박.
잘가온 숙소[ 더 플라자] 절대 요금 협의 없음. 친절함. 깨끗함. 타올 제공!!
나랑은 상관없는 디럭스룸까지 구경시켜 주면서 담에 한번 이용해 보라신다...ㅎㅎ
숙소 아저씨가 추천해 준 식당에서 밥 먹고 오니 웬 한국인 친구들 4명이 웅성거리며 문 앞에 서있네? 동현 군과 3인의 언니들. 건축이 전공 이랬었나? 건축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관람 타겟을 정하고 있었다. 타겟이 있는 건 좋은 자세다. 나랑 이동 방향이 반대여서 방금 지나온 아잔타. 엘로라 정보 주고받고, 석류 잘라먹고...... 또 보게 되면 보자고 ~ 아직은 한국 사람들 많이 보지 못했고. 봐도 그닥 인사 안 하는 편인데 하루종일 혼자 돌다다니다 숙소에서 만나는 건 반갑네.
일요일 낮에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 이런 경우가 생긴다. 대부분의 장거리 기차 이동은 야간을 이용하는데 혹 낮 시간 이용할 기회가 생기면 그것도 괜찮다. 노래하고 춤추는 기차여행을 어디서 또 하겠어.
< 이러고 세 시간을 쉬지 않고 노심...................-.-;;;>
암다바드까지 타고 온 기차. 저게 만든 지 20년밖에 안 됐다고? 한 40년은 쓴 줄 알았고만. 얘들 시설 관리 진짜 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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