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도 화강암 만만찮은데 이렇게나 다양하게 사용하는 건 처음 본다. 주택 담장만 해도 흔한 건 아니잖아. 심지어 화강암을 포도덕으로 쓴다고? 어..... 석재를 기둥으로 쓰긴 하지. 그런데 이거 맞아?

어제 22.1 km - 12:20 도착.
오늘 30.5 km - 12:10 도착.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이 길.
12시에 도착한 폰테베드라 공립, 사람들은 널브러져 있고 배낭들만 가지런히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도 대리도 통하지 않는 이 단순하고 공평한 룰이 작동하는 아름다운 풍경. 공립이기에 지킬 수 있는, 점점 더 펜시 상품 같아지는 이 길에 '아직은 아냐' 라며 순례길 답게 지켜주는 이제 몇 남지 않은 고리타분하지만 믿을 수 있는 규칙. but 이 와중에도 새치기하는 바퀴 같은 커플이 있네? 당당함을 그딴 식으로 발현해서야 되겠니, 츳.








장 보고 나온 김에 대성당까지 왔다. 까미노 경로에 있는 성당이어서 어차피 내일 아침에 들르게 될 테지만 새벽은 어둡잖아. 그런데,.... 배터리가? 알베 나설 때 핸드폰이 30% 정도였는데 보조 배터리 챙길까 하다가 '뭐, 구글맵 정도 볼 텐데 두어 시간은 버티겠지'싶어(사실은 귀찮아서) 그냥 나왔거든. 그런데 성당 둘러보고 복귀하려고 지도 앱 띄우는 순간 확 꺼져버렸다. 얼레~ 뱡향이??

폰테베드라 가로망이 가로/세로 직각으로 정비된 게 아닌 데다 대성당 가는 길에 곡선 도로까지 있어서 기억만으로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길 잡기 어려웠다. 같은 길 몇 번씩이나 왔다 갔다 하다가 겨우 영어 통하는 현지인을 만났는데 '무니시팔 알베르게'는 역시나 모르더라. 다행히 장 보러 나오던 길에 기차역 봤던 기억이 떠올라 물어보고 방향 잡아 복귀할 수 있었네. 와~ 낯 선 도시에서 폰 배터리 떨어지니 지능도 낮아진다야. 안전관리 측면에서 한국을 기준으로 잡으면 안 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게 '치안', 아마도 그다음은 폰 배터리 관리 같아.


사진 건네줬던 다니엘라가 이탈리아 팀이 저녁에 파스타 만들 거니까 같이 먹자고 말을 걸어왔다. 안 될 거 있나. 꼽사리 좀 껴보자. 지난 순례 그라뇽에서 에서 입었던 이태리 상처나 달랠 겸. 주방에서 한 동안 왁자지껄 하더니 냄비 가득 파스타를 들고서 (군가 같은) 노래 합창하며 다이닝으로 들어왔다. 얘들 음식 부심 진짜...ㅎㅎ

'리가토니 알라 까르보나라' 정도 되려나? 별 재료 안 들갔는데 왜 이리 맛있는 거야? 버터와 크림 베이스에 잘게 다진 베이컨. 눈에 안 보이는 녹아들어 간 재료가 좀 있나? 각 나라의 특색있는 기본 양념은 한 수 접어줘야해. 역시, 이탈리아 친구들은 적으로 돌릴 게 아니라 친구 먹고 음식 만들게 해야 해. 지난 까미노 그라뇽 정반대편의 저녁 식사.
내 자리 맞은편에 흑인 순례자가 앉았는데 같은 테이블에 앉은 식객 중에 그 친구 국적이 이탈리아란 걸 알면서도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어보는 애가 있드라. 뭐래는 거야. 피부 까맣다고 아프리카에서 왔겠냐? 밥 먹는 자리답게 걔랑 음식 이야길 많이 나눴다. 우린 마늘 많이 먹는다며 한국식 알리올리오 이야기 했더니 그런 외국( 지 입장에선 우리나라) 음식을 한국인도 만들어 먹느냐며 신기해했다. 짜식 우린 다 먹어. 장기 여행하는 한국인에게 필요한 게 뭐냐는 질문에 '채식과 발효 음식' 이라니까 질문한 친구는 알아들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애가 'fermentation'이 뭔지 모르더라.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아, "go bad, but good way" 알아들은 친구가 박장대소한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영어는 제 자리지만 말은 좀 늘었어.

음식 조리는 고사하고 돈 갹출도 없이 얻어먹은 저녁이라 식후 설거지는 내가 맡았다. 걔들 음식 솜씨에 비해 설거지는 좀 삐걱대드라. 각자 잘하는 거 하면 되지 뭐.
일정 점검. 내일 31.2km 찍고 나면 영국 길에서 콤포스텔라 복귀하는 마지막 날 빼고는 30km 이상 걷는 날이 없다. 막 날은 이미 숙소까지 잡아 놓은 터라 여유 있게 걸을 예정이고 내일 공립은 베드 수 78, 그리고 오늘 폰테베드라도 16:00까지 만실 안 되는 것 보니까 내일 그리 빡빡하진 않겠네.
아일랜드 토니가 보트로 들어가는 길 집요하게 꼬드기는데 난 빠지기로 했다. 이 친구 급해지니 갑자기 여행 강론을 하드라고. 야, 동양사람에겐 그렇게 영업하는 거 아냠마. 그리고 그 길이 오리지널이란 설명도 틀렸지만 오늘 폰테베드라 무니시팔 순례객 중에 대성당 찾아간 놈 나밖에 없어, 늬들 오후 내내 다 놀고 있었잖아. 그러면서 뭔 오리지랄 찾고 있어. 또 이건 완전히 사감에 근거한 선입견인데 영국인 토니의 말투가 가이리치 젠틀맨에서의 휴그렌트와 너무 닮아 도저히 뭘 같이하고 싶지 않았다. "Kim, 요 플랜 이즈 쏘 파~아스트. 썸타임즈 트래블이즈 겜블링" 야, 난 계획에 예약까지 다 잡아놨는데 왜 때문에 너 따라서 갬블을 하겠냐고. 거절하려니 "조금 더 생각해 보자"는데 거기서 끊었다. 그 생각 나만 할 거잖아. "놉, 지금 결정해야 해. 시간은 의미 없어. 난 아웃할래"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거절로 마무리 지었다. 폰테베드라 재밋네. 다음에 오게 되면 보트 한 번 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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